< 감각 끝 >
구석도 감싸는 형광등을 등에 지고
살을 타고 피워내는 가지들을 보았다
가지는 처음에는 꽃인 줄 알았다
이내 곧게 나아가는 길만 보고선
지쳐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옆 길로만 샐 뿐이다
처음으로 되돌아갈 길은 없다
그저 묵묵히 공간을 앞으로
앞으로만 가르고 있다
뿌리는 지극한 사랑 뿐
의식은 멀리 나아가기만 한다
멀고 멀리 가던 가지가 벽에 닿다
한 줄기 두 줄기
다닥다닥 벽에 들러붙어
빛 줄기만 갈라내고 있다
벽에 가지들의 외침이
어둑어둑 박혀든다
감각의 끝이 새겨진다
< 재회 >
저 산 입구에 잊고 온
감각들이 쫓아 올라왔다
나는 잊은 적 없었으나
잊고 있던 무심함을 자책하며
반가움 어린 두 손으로 안았다
따스함이 아련히 녹아온다
나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불안은 고요히 물러났다
다시 뒤돌아 위를 올려보았을 때
잠 들려 뒤척이는 나무들
산등에 걸려 넘어지는 햇살
가지런히 산을 쓰담는 바람이 보았다
정상을 보려 눈을 치켜 뜨면
산의 입김으로 목덜미가 혼이 난다
발 아래 길 만을 바라보고
무던히 걷기로 했다
달 빛의 든든함은
하늘의 북두칠성보다
내 발 길 앞에 누웠다
< 바람 걸음 >
갈비가 부러져 한쪽으로 처진 사람을 본다
그 치우침으로 노래하던 예술가
균형을 찾고 싶어 하늘을 수영하다
그 치우침으로 노래하던 예술가
균형을 찾고 싶어 하늘을 수영하다
수 많은 사람이 그랬듯이
땅으로 내려와
언젠가부터 바로 걸었다
자기를 꼭 닮은 바위를 발견했다
땅으로 내려와
언젠가부터 바로 걸었다
자기를 꼭 닮은 바위를 발견했다
바위에 채인다
바위가 채인다
바위가 채인다
나는 법을 잊었다
예술가의 청혼을 잃어버린 하늘은
너무 슬퍼 비구름을 지운다
예술가의 청혼을 잃어버린 하늘은
너무 슬퍼 비구름을 지운다
처연한 바람이 분다
하늘과 우리 사이엔
바램이 가득하다
바램 어린 바람
< 천 리 밖에서 >
대지의 약속은 바람이 되어
정오의 걸음은 방향이 없다
겨울 한기가 머리에 스미어
내 손은 나를 쥐고
햇살 아래 스스로를 산골한다
덧없는 하루이고
무감각하게 웅크리다
눈을 크게 뜬다
나무들 깔리운 풍경이 멀다
갈 곳에서 천 리 밖
배경 밖으로 벗어났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가 지금이며
내일이 아니라면
지금이 내일이니
코를 스치는 한기 내음
훌훌 한기를 털고
낙엽 지는 아래로 간다
< 테를 새김이오 >
내 삶의 한 줄의 테를 또 새김이오
당신의 조각칼로 새겼소
주고받은 무게만큼 깊게 패이니
색 없는 피가 흘러 시간에 풀어진다오
뒷산의 나무를 기억하시오
나무는 대지가 등 돌릴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 스스로 테를 새기고
그 테는 지구가 떠난 방향으로 새겨져
길 잃은 나그네에게 방향을 알려준다오
내가 새긴 테 또한 방향이 될까
멍든 가슴팍만 바라보며
버스 안에서
길거리 위에서
테가 빛나기만을 기다린다오
그러나 하늘만 비추는 가슴은
미어지고 미어지다 푸른 얼룩만 됐다오
나는 방향을 잃고 어지러울뿐이오
나는 친구를 기다리오
내일이고 모레고 꼭 온다고 약속했지
자네가 날 떠난다던 그 날
시간은 나에게 약속했다오
내 방향 보여주겠다고
당신의 조각칼로 새겼소
주고받은 무게만큼 깊게 패이니
색 없는 피가 흘러 시간에 풀어진다오
나무는 대지가 등 돌릴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 스스로 테를 새기고
그 테는 지구가 떠난 방향으로 새겨져
길 잃은 나그네에게 방향을 알려준다오
멍든 가슴팍만 바라보며
버스 안에서
길거리 위에서
테가 빛나기만을 기다린다오
미어지고 미어지다 푸른 얼룩만 됐다오
나는 방향을 잃고 어지러울뿐이오
내일이고 모레고 꼭 온다고 약속했지
자네가 날 떠난다던 그 날
시간은 나에게 약속했다오
내 방향 보여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