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다 일어나
꿈을 꾸고 일어난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그 장소,
알 리 없는 그 순간의 시간.
내 마음 속 자그마한 방에 살았던 너.
점점 희미해지다가 이내 어디서 언제 누구와 있었는지조차 까먹는다.
일어나 꿈을 꾼다.
길을 향해 뻗어나갈 미래의 계획.
길을 닦기 위한 현재의 노력.
내 꿈을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세어간다.
점점 희미해지다가 이내 어디서 언제 누가 존재하는지조차 까먹는다.
일어나 지금에 향한다.
지금과 마주한다.
지금에 머문다.
꿈을 위해 좇는 시간에서 나를 바라보는 여유의 시간으로 이끈다.
넌 꿈이 뭐니?
난 지금을 가장 행복하게 사는 거.
마음 속 뿌리
바람이 부는 날
우리는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봅니다
아니, 나뭇잎과 작은 나뭇가지가 흔들릴 뿐
나무의 뿌리는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휘청거리며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현재 우리 마음의 시간이 흔들릴 뿐
그 깊숙한 결의는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뿌리를 보십시오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굳건히 서있습니다
작은 도기(陶器)
난 이 일과 맞지 않나봐.
난 이걸 할 재목이 못 돼.
내 그릇은 이거 밖에 안 돼.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네 그릇은 아직 다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야.
지금은 작은 그릇에 불과할지 몰라도
도공이 깊게 만들면 속이 깊은 그릇.
도공이 넓게 만들면 모든 걸 다 담을 수 있는 그릇.
너의 그릇은 아직 가마에 들어가지 않아 떨어뜨려도 부숴 지지 않아.
세월의 땀이 너의 그릇에 흙을 적시고 덧대어 모양새 있는 그릇으로 변모시킬 거야.
그러니 걱정 마.
너의 그릇은 잘 만들어지는 중이니까.
책장 밑 읽히지 않는 책
‘평범한 어느 날, 그녀를 만났고 그는 첫 눈에 사랑에 빠져버렸다.’
가장 진부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사랑과 가까워진다.
다음 장, 다음 장. 그녀를 생각하며 설렌다.
왼손의 무게가 조금 실릴 때 그녀를 만난다.
‘그녀의 감촉이 그에게로 전해진다. 마치 처음 하늘을 나는 새처럼 감격한다.’
행복한 페이지들은 간략한 감정으로 읽혀진다.
그리고 너무도 빠르게 우리는 이별한다.
나는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거지? 내가 뭘 한 거지?’
‘이런 생각들이 허공에 떠오를 때 쯤 그는 혼자가 된다.’
사건과 갈등으로 페이지는 채워간다.
에필로그에 다다른다.
그리고 그리움을 채 삼키기 전에 작가는 이야기를 끝내버린다.
이내 나의 시간도 멈춘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오늘로 구체화된다.
누구보다 열렬했고 진실 되었던 나는 오늘이라는 페이지를 끝으로 덮어진다.
다시 책장 밑으로 들어가 박힌다.
그렇게 아무도 기억 못 할 진부한 이야기로 진열된다.
나는 행복한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처음, 그 우주에서
서로의 사이 공간에는 무수한 핵이 존재한다.
나는 그걸 관통한다.
날카로운 바람을 헤치듯 상처입고 다치면서 그것에게 다가간다.
관통된 나는 커다란 우주에 놓여진다.
한창을 그 우주에 몸을 담고 있을 때면 반짝이는 무언가가 아려온다.
반짝이면서 따스한 우주 속의 우주가.
반작용에 의해 다시 바깥으로 튕겨져 나온다.
새까만 우주를 빠져나와 현존한다. 공허하다.
나는 바뀐 것이 없다. 허전하다.
나로 돌아오자마자 무언가가 나를 관통한다.
내 우주 속 무언가가 피어난다. 검디 검은 그 미궁 속 작은 빛이 인다.
그것이 무언가에 반사된 허상이건 내면에서 개화한 영혼이건
나에게 머문다.
나는 알고 있다. 너도 알고 있다.
알고 있기 때문에 모른다고 할 수 있고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잘 알 수 있다.
너와 내 우주 속 작게 흔들리는 그 빛무리에 감격한다.
너와 내가 만났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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