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그 씁쓸함을 위하여 외 4편

by 안녕 posted Dec 1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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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그 씁쓸함을 위하여


지루했던 일상에

한줄기 빛을 얻을

그 친구들을 위하여


움츠러드는 발끝을 외면하다

이제금 눈 길 주는

그 이웃들을 위하여


인적이 드물던 자리에

하나 둘 플래시를 터뜨릴

그 기자들을 위하여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

다시금 표정을 되찾았을

그 사람들을 위하여


잊혀져버린 이름들이

온갖 치장으로 다시 태어날

이 세상을 위하여


삶과 죽음

양지와 음지

중심과 가장자리,

그 경계에 서 있는

이 세상 모든 만물들을 위하여


오늘도 모여 축배를 들고

수평선, 저 위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자


모든 두려움은 쏘아 올리고

살아생전 모았던 외로움만을 흘리자


모든 미련들은 벗어 버리고

살아생전 느꼈던 처절함만을 날리자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 겨울, 아련했던 네 향기에도

열렬히 부르고 불리던 네 이름에도

나지막이 속삭이던 그 입술에도

이제 막 뜨이는 눈망울에도

밤하늘과 맞닿은 그 마을에도

한 겨울, 쓸쓸히 굳어간 손끝에도

아버지, 그 뒤로 따르는 고독함에도

서울역, 어머니를 그리는 이들에게도

짙은 고뇌 속에 잠이 들 청년에게도

한 때는 진정한 사랑을 꿈꿨을 여인에게도

이 세상 가장자리, 그 자리에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오늘도 쉽게 써진

시, 그 위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그리고



생(生)의 가지


생의 가지는 흘러

어머니에게로 가

눈물이 되었다


생의 가지는 흘러

친구에게로 가

빛이 되었고


생의 가지는 흘러

한 사람에게로 가

기억 속 추억이 되었다


다시금 생의 가지는 흘러

여린 달에게로 가

벗이 되었고


그 벗은

나에게로 와

손길이 되었다


그 손길은

다른 사람을 향한

꽃내음으로 피어났고


또다시 생의 가지는

흐르고 흐른다


지금, 너의 생의 가지는

누구에게로 흐르고

무엇으로 피어나는가



지금, 이 순간


- 이제 막 봉오리를 터뜨리는 저 꽃망울처럼

세상 모든 것이 빛으로 다가오고 엄마의 가슴에 파묻혀 존재를 구축하던 유년 시절


'교복'이라는 것에 들떠보고 진정한 친구의 개념을 막 형성하기 시작할 즈음,

함께하는 일탈이 우리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해주던 아름답던 그 시절


만남과 헤어짐, 그 뒤에 오는 쓸쓸함과 그 속의 아픔을 느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법도 배우며 성숙해지던 그 시절


인간 내면의 추악함과 세상의 양지와는 다른 음지가 있음을 서서히 깨닫고

중심에서 벗어난 가장자리에 머무르며 처연함을 지켜갈 때


무엇을 바라, 엄마의 눈빛은 그토록 처절했는지 애써 외면했다

그렇게 구석구석 흩뿌려진 생의 의미를 부정하기 시작할 즈음


머물러준 그 인연 속의 깊은 애틋함에

비통하면서도 그 위대함을 부정할 수 없어 끝없이 흐르던 눈물을 마주한 후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애타는 울부짖음과 헐벗은 저 나무를 바라보며

새로이 존재를 구축하기 위해 다시금 우뚝 선 지금, 이 순간.



마음의 시


엄마,

나 시인 될까

장난 반, 진담 반

던진 그 말에

홱, 고개를 돌려

쏘아보던

그 눈빛


사실

엄마의 마음속에도

시가 있으면서

살아온 삶에서도

시를 품었으면서

말이다


혼자

방에 들어와

장롱 깊숙한 곳,

엄마가 학창시절

직접 엮었을

시문집을 꺼내본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살아온 삶에

또 살아갈 삶이 있기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마음속의 한 소녀


나는 오늘,

그 소녀를 대신하여

마음속의 시를

한껏

담는다




박선미

ddunmiya@gmail.com

010.6377.3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