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파도
그저 휩쓸려가며 어슬렁 어슬렁
다른 물결들처럼 지내도 됐지만
구태여 남을 밀어주며 밀려났네
항시 다른 풍경과 같은 위치에서
지평선을 바라보며 사라질곳을 찾고있네
낡디 낡은 파도는 점차 형상을 잃었으며
드센 상어를 품지도 못하게 됐지만
어느 섬인가 모래섬 한줌을 찾아서
일렁 일렁 신기루 담아 바다를 휩쓰네
청화
어떠한 꽃이 다가와 물었다
너는 왜 혼자만 파란색이니
청화는 대답했다
내 잎이 파란 이유는
너가 찾기 쉽게 하기 위해서야
어떠한 꽃이 떠나갔다
다른 꽃이 다가와 물었다
너는 왜 혼자 파란색이니
청화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내 꽃봉우리가 파란 이유는
햇님이 찾기 쉽게 하기 위해서야
다른 꽃도 떠나갔다
틀린 꽃이 다가와 속삭였다
너는 왜 혼자서 파란색이니
청화는 틀린 꽃을 감싸며 답했다
내 줄기가 파란 이유는
너와 내가 닮아가기 위해서야
틀린 꽃은 이윽고 물들어갔다
몽룡
잠이 들고 깨기를 반복하는 밤
잠에서 일어나자 꼬리가 보여서
무턱대고 큰 꼬리를 만지자
밤하늘이 나를 덮쳤네
세상이 급변한걸까 자문하니
은하수에 휩쓸려가네
별도 없는 하늘에 손을 뻗어서
사랑하는 사람에 이름을 끄적 적네
순간 세상이 한번 출렁였고
멀뚱 별과 마주하고 있었네
집인가
매번 집으로 가는길 본 나무
매일 집으로 가는길 본 밤하늘
매주 집으로 가는길 본 어머니
매달 집으로 가는길 본 나
이 길로 가면 집인가
이 길의 끝은 집일까
하염 없이 걷다가 깨달았네
한참 전에 밟고 지나왔구나
추기
가을을 담은 포도주의 향에서
지천에 널린 모자들의 땀으로
라벨을 붙여 병을 짜네
볏집 빛 나는 흰 쌀들이
가을색으로 물들어가며
즈려밟지 않음에 오랫만에
과거를 딛고 감사에 기도하네
하늘에 낀 먹칠을 걷어내며
밥 한 수저를 올려드리네
성명: 전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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