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 (5편)

by jhd828 posted Feb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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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었니.

이 의문문에는 왠지 물음표가 어울리지 않더라.


내 밥 사정을 물어주는 것이.

전봇대 여기저기 쌓여 늙은 노인들의 유모차를 기다리는 누런 박스마냥.

나를 그렇게, 누렇게 만들더라.


그래 나는 말했었지. 나는 너무 힘이 듭니다.

아주 많이 힘이 들고, 

그래서 숟가락 하나 드는 일도 힘이 들어. 젓가락을 들고,

깨작깨작 밥알을 긁어먹고.

가끔은 그 젓가락 두 짝도 힘에 부쳐.

젓가락 한 짝을 들고,

밥알 한 알, 한 알, 찍어 먹습니다.

언젠가 그보다 더 힘이 들어지면

밥공기에 왼손을 푹. 찔러 넣고,

손톱 사이사이 끼인 밥 알, 한 알 한 알을.

혀에 잔뜩 공들여 침을 발라. 날름 날름 뽑아 먹겠지요.


내 힘이 듦을. 그대 심장을 뽑아 가장 붉은 곳에 혀를 찔러 넣고. 

그래 나 죽겠어요. 죽겠습니다. 죽고 싶어요. 말하고.

그 자리 그대로 돌려 붙여, 다시 표 안 나게 살가죽을 덮어 놓고 싶었다.


내가 죽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 인 줄 알고.

나는 죽을 마냥 힘이 듭니다. 했던 것이. 내 힘듦과 같은 힘듦인 줄 알고.

내 힘듦을 말할 땐, 늘 죽음과 짝을 지었지.


그때마다 묻더라.

밥 먹었니. 밥은 먹었니.


그래. 나 밥 먹었습니다. 밥도 먹고 물도 먹고.

어제는 밥 먹고, 단 과자도 한 줌 쥐어먹고.

그제는 밥 통에 쌀 밥 놓고, 라면 한 봉지 김치 가득 썰어 넣고 얼큰히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밥 힘들여, 나는 또 힘이 듭니다. 죽겠습니다. 하고 말하고.

그 밥 힘이 다해. 꺼이 꺼이 하면. 그대는 또 귀신같이 묻더라.

밥 먹었니.


밤과 죄


밤이면.

찬물, 뜨신 물 구분 없이

욕조에 한가득 받아내어.

진한. 불결의 말을 토하듯 쏟아내고.

그 안에 몸을 누인다.

살가죽에 녹아드는 이 수많은 죄들.

죄를 뒤집어쓴 몸둥아리.

죄를 입고 잠드는 몸둥아리.

아. 이로써 청결하다. 개운하다.


곰팡이


장판 위에 그대의 쉰내 나던 호흡이

누런 그림자처럼 남았다.


물 한 바가지 가득 퍼다

억척스레 닦아내고, 훑어내고.


아려지는 팔목을 목아지 졸라내듯 부여잡고.

닦아내고 훑어내고.


다시 비틀어지는 손. 목아지. 

짜내어지는 걸레짝.

바가지에 녹아드는 누런 그림자.


이토록 성스러운 성수가 되어.

목젖 꿀렁이며 한참을 들이키니.

목아지에 피어나는 누런 곰팡이.


그대는 이렇게도 누런 맛이었던가.


환상


언젠가.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던 시절.


여유란 것에 대한 환상은.

초라하지 않고.

가난하지 않고.

궁핍하지 않고.

창피하지 않다고 믿던 시절.


갑작스레 쏟아지는 빗줄기에

우산 한 자루를 사기 위해 역 앞의 편의점으로

돌린 발길.


한 자루에 삼천원이라는 비닐우산 앞에서.

방황하는 눈길. 손길.


결국

맨몸으로 들어선 빗길.


나뒹구는 빗줄기 앞에.

조각나는 환상 앞에.


나의 삶은

삼천원을 위한 삶이라

약속하던 그 날.


나의 여유란

삼천원에 기대는 삶이라

울어버린 그 날.


호박잎


내 늙은 어미는 나이 마흔에 배가 불러 나를 낳았다.

남산만큼 부른 배가 남사스럽다.. 남사스럽다.. 하며 동네 병원에서 나를 낳았다.

술에 취해 자는 늙은 아비를 깨우지 못해 옆집 사는 미성 식당 아저씨의 봉고차를 얻어타고는.

남의 집 차에 양수를 쏟을까 눈치를 보고, 밑에 달린 것을 묻는 할머니의 눈치를 보고.

나를 품을 적 남사스러운 배를 숨기려 꽁꽁 싸맨 까닭인지,

나를 낳을 적 이리저리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한 까닭인지.

내 머리통은 어느 계집애의 겨드랑이에도 박히지를 못하고. 지금도 자라지를 못하고.

아홉 해 먼저 태어난 그것은 때를 맞추기도 잘 맞추었으나 밑에 달린 것이 있으니 개미 똥을 먹어도 자라기만 잘 자라.

그 콧대가 내 정수리를 찍어 누르고. 나는 또 자라지를 못한다.

나는 나이를 먹어도 늙지를 못하고,

그 늙은 것들은 자꾸만 늙어가 어느새 밑에 달린 것의 수능 엿가락을, 대학교 등록금을 준비하고 있으니.

내 이름만 나란한 수학여행 가정통신문은 냉장고 문에 붙어 떠나지를 못한다.

밥상 위에 차려진 호박잎과 강된장. 꾸역꾸역 삼키며 나는 맛있어요. 맛있어요.

그러니 나는 애늙은이요. 애늙은이요. 해도 천 쪼가리 같은 호박잎은 삼키기가 힘들었다.

서러움만이 늙어가는 그 집 앞에. 늙지 못해 떠나지 못하는 그 집 앞에.



정혜단

gpeks0828@hanmail.net

010-3105-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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