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차 창작콘테스트 시부문] 신생대 제4기 외 4편

by 원준상 posted Feb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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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생대 제4

                                          원 준상

                  

역사책 속 공룡은 신생대 전에 멸종했다

덜덜 떨었던 공룡은 어디로 숨어버렸나

은행나무는 한반도에 머물다 부끄러워 성장을 멈췄다

21세기의 거리는 애완식물로 넘쳐나고

태양을 닮은 은행알에서 젖비린내가 난다

따뜻한 알은 공룡이 꿈틀거린다

 

사람들은 신생대의 끝을 열어젖히고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출생을 부정한다

사람은

영장류의 후손이 아니라 공룡의 후손이라는

은행나무를 심고 지나가는 계절을 즐긴다

 

사람은

허술한 거리에 선조의 묘비를 세우고

가을마다 거리 위에 은행알을 올린다

지구는 뿌리에 박혀있고

공룡은 큰 소리로 기도한다

 

벨로키랍토르는 빠르고 영리하다

그것은 커피를 마시며 스마트폰을 쳐다본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작은 손에 턱이 발달했다

그것은 편의점에서 풀죽은 샐러드 도시락을 고른다

척박해진 땅에서 식물은 그들의 주식이다

 

이구아노돈은 무리를 지어 살아간다

그것은 촛불을 들고 두 다리로 힘겹게 걷는다

트리케라톱스는 머리에 뿔 달린 앵무새 같다

그것은 텔레비전에서 연설문을 국어책처럼 읽는다

삶은 은행잎처럼 너무나도 가볍다

 

공룡은 사람을 위해 이미 신생대로 떨어졌다

지구가 덜덜 떨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해안가 터미널

                                    원 준상

 

굽이 긴 도로는 물소리를 품고 있다

거친 물보라를 뿜어내던 버스는

파도를 거스르고 심해의 물고기처럼

눈을 반짝인다

초점 없는 눈빛들은

끝없이 썩고 찌든 비린내를 맡으며

파도 소리를 찾아 터미널로 모여든다

 

새벽 공기에 부들부들 떠는 사람들

종이 쪼가리를 삶처럼 움켜쥔다

속살은 조개보다 사람이 더 내밀하다

다들 서로를 두드리기만 할 뿐이다

 

바닷바람이 조개의 혀 위에서 가볍게 튀어간다

옆으로 기는 게 같은 쓰레기

노파는 집게로 쓰레기를 집는다

쓰레기는 늙은 갯강구의 다리가 된다

무심한 행인은 텅 빈 게 껍데기를 던지고

사람 비린내는 점점 엷어진다

 

엄마를 목 놓아 부르는 갈매기 한 마리

엄마는 의자에 앉아 배를 문지르다가

다시 숟가락을 든다

제 새끼에게 김치찌개 한 수저를 건넨다

 

정거장으로 들어오는 버스

사람들이 버스를 타도 그 안에는 사람이 없다

메밀꽃이 일면 죽음이 오고

2, 정거장에서 삶을 모셔간다

 

어두운 차 안에서 사람들은 눈을 감는다

드르릉

엔진 소리에 섞이는 심해의 기포소리

버스에는 목적지가 적혀있지 않다

 

한 가구

                                  원 준상

1

외출

넘을 수 없는 바닥 먼지의 띠

 

전단 덕지덕지 붙은 전봇대 밑으로

사람마다 붉은 딱지가 쿵쿵댄다

무심히 그림자가 길어질 때면

전봇대는 죽은 사람을 먹고 자란다

등받이가 무거워

사람은 밑에서부터 눅눅하고 맛있다

 

지갑은 색조 화장을 하지 않고

안방에서 나와 산부인과로 간다

검은 리모컨은 구두를 신고

거실에서 나와 택시에 기어를 넣는다

 

전봇대 밑에 버려진 가구들

사람이 되기 위해 썩어간다

 

2

귀가

넘을 수 없는 바닥 먼지의 띠

 

북적북적한 휴일은 가구가 이사하다 귀빠진 날

보이지 않는 할머니

휴대전화 벨 소리는 주인을 찾아 울리고

무너진 창고 같은 노인이 말한다

안 맞는 것 빼고 다 가져가

가볍게 들고 다닐 것만

, 아버지

누룩 내음 풍기는 장롱만 남았다

모두 새로운 자리를 찾아

다른 집으로 이사 간 지 오래

장롱은 문짝이 하나 없다

나무 지팡이를 문짝 삼은 장롱

거대한 몸뚱이 때문에 꼼짝 못 한다

 

바닥 먼지의 띠를 넘어, 한 가구는 일어난다


손의 미로

                         원 준상

 

물의 아버지가 인간에게 내린 형벌

그것은 눈물이고 미로다

 

미로는 장미로 만들어졌고

손은 항상 가시에 찔린다

상처에서 나오는 붉은 포말

흥분한 황소가 나를 쫓아온다

 

황소는 육식성 동물이다

항상 사람을 잡아먹는다

우리는 서로를 잡아먹는다

 

황소와 나는 마주한다

안 내면 술래

가위, 바위,

 

황소는 항상 술래다

망설일 때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손끝에 울고 있는 어머니

 

미로는 항상 물이 차오른다

물은 손을 하얗게 부식시킨다

그럴 때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19세의 내가 있다

젖은 주민등록증에는 황소의 얼굴

꼬깃꼬깃한 서류 위 붉은 노예마크가

내 꼬리처럼 질척거린다

 

손끝에는 미로가 있다

누구나 그 안에 갇혀있다

사람으로 변하는 황소가 있다

 


파충류가 되어 축하합니다

                                                 

                                             원 준상  

할머니는 갑자기 쓰러졌다

고성에 작은 노인 요양병원

할머니의 뇌에서 파충류가 부화했다

활짝 열린 머리에서

새끼 공룡 한 마리가 꿈틀거릴 때마다

할머니는 더욱 단단하게

공룡을 품었다

 

우리 가족은 두드러기가 자랐다

뇌수술이 끝난 후로 너무 가려웠다

긁어도 시원하지 않은 기분과

붉게 달아오른 할머니는

차가운 포유류를 벗어났다

파충류가 되어 축하합니다

나도 감사합니다

 

할머니의 등과 뒷머리는

우리 가족처럼 도톨도톨한 피부로 변했다

차츰 딱딱하게 탈피했다

손과 발은 퉁퉁 부었다

공룡은 할머니를 잡아먹고 침대에 누웠다

파충류가 되어 축하합니다

코 고는 소리를 따라

흐르는 심박계 소리가

엄마의 말을 따라 올라갔다

머리에 살가죽이 없어

단단해진 할머니는

공룡의 머릿속에 있었다

 

옆 침대에 있던 할머니도

탈피를 통해 숨 쉬는 화석이 되었다

고성에는 향내와 탄내가 무성하고 빽빽하다

벗겨진 허물의 썩은 냄새는

바다까지 파랗게 물들였다

할머니, 파충류가 되어 축하합니다

침대 위 화석을 불편하게 만지고

무사히 잘 죽어가는 할머니가

침대 위에 봉긋 누웠다


이름: 원 세경(본명)

이메일: zhsks0590@naver.com

번호: 010-3016-0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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