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한국인]제 22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 - 유월의 비무장지대 외 5편 (강병효)

by 시를노래하는군인 posted Mar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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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비무장지대


창안으로 드리우는 햊빛과

살랑이는 바람이

눈을 적신다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젖 물리는 어머니의 체온

노고한 농부의 땀과

죽 한 그릇에 담긴 온정이

숨결로 살결로

아련히 스며든다

 

그런 당신들은

웃음과 체온과 온정

그리고 땀을

잠시,

아주 잠시

내려 놓았다

 

그것은 서러운 어느날이었다

서로를 겨눈 날들은

화려하게 선을 그어 놓았고

비참하게

아련하게 선명했다

 

부릅 눈을 떠보니

고철이 내뿜는

서로를 깎아 내리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순간

저 멀리

고라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처량한건지

애처로운건지

 

아니,

어쩌면

옛 훗날을 동경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일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

()



삶이란

1평 채 안 되는 인큐베이터에서 갇혀 있다가

18평에 살다가

25평에 살다가

38평에 살다가

43평에 살다가

56평을 꿈꾸다

63평을 꿈꾸다

72평을 꿈꾸다

81평을 꿈꾸다

꿈꾸다

꿈꾸다

꿈꾸다가

 

결국

또 다시

1평 채 안 되는 무덤에 갇히는 것

 

어쩌면

삶은

1평과 1평 사이의 비좁은 순간일 것

 

다만 다음 생은 꿈보다 크나큰 천국의 지평이리라




가지별


숨 고르며 떨어지는 벚꽃잎

이를 미소로 맞이하는

너를 향해

덩달아 미소 지은다

 

더욱 쥐어보려

떨어지는 꽃잎을 기다렸다

 

그때는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애처로운 것인지

미처 알지 못한다

 

어둑히 내려앉은 밤하늘에 기대어

앙상해진 가지 아래

떨어질 것만 같은

별을 바라본다

 

가지에 수놓은 저 별들은

밤하늘 밝히는데

어두운 이 내 마음에는

별 수 없네

 

이제는 쥐어볼 수도

기다릴 수도 없음에

 

문득

나는

서러워진다




너를 위한 시


고소한 찹쌀도넛 향기 내뿜는 부산시장을

어머니 손잡고 졸래졸래 뒤따르던 소녀는

어느덧 22년하고도 11개월이라는 시간을 걸어

어른아이가 되었다

 

동떨어진 어느 곳에서

너의 안부를 묻던 밤

아직은 어린 소녀 같은 미소 뒤에

무엇인가 쓸쓸한 한숨이 서려있었다

그 한숨은 턱없이 깊었고

사막의 공기처럼 메말라 있었다

 

어른아이로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가슴이 저미도록 고독한 여정일지 모른다

 

분간 없는 갈림길에 헤매이고

사정없이 내달리는 시계 초침에 다급해 했을 것이다

그런 너는

무너지기 쉬웠고

또 무너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새삼

어머니 손을 잡고 부산시장을 거닐던

어린 소녀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독한 길을 걷고

또 거닐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너는 깨달을 것이다

 

굽이쳐 흐르는 냇물은 길 없이 드넓은 바다가 되지 못하듯이

돌고 도는 하나의 별이 또 다른 별 없이 찬란한 은하수가 되지 못하듯이

계절을 견뎌낸 벚꽃 잎이 뿌리 없이 아름다운 벚꽃길이 되지 못하듯이

떠오르는 햇살과 누군가들이 물어오는 안부와

따듯한 어머니의 손과

그리고 이 시가

너를 위해 있기에

네가 걸어온 더딘 시간 속의 길은

네가 되기 위한

헛되지 않은

에움길이었다는 것을




소명


유독 이곳의 별이

이토록 밝게 빛나는 것은

끝나지 않은 전장을 바라보는 당신들의

눈빛이 젖어있음에 있다

 

나는 이제 그 별을 별주머니에 고스란히 주워 담아

당신들이 걸어온 더딘 시간 속의 길을 짊어지고

이곳이 아닌 다른 어느 길에 찬란히 흩뿌릴 것이다

 

더 이상 담을 별이 없어질 때까지 흩뿌려

별을 떠나보냈지마는

텅 빈 별주머니 속에 잔존한 온기는

차마 떠나지 않고

깊이 남아있었다

 

그 온기는

무엇보다 뜨거웠고

아련했음에

나는

그저 한없이 숙연해졌다

 

이제는 별 없이 시려진 하늘을 지고

한줄기 빛이 되어

어둔 이곳을 환히 밝히는 것이

너와

나와

그리고 우리의

소명일 것이다




흔들림


하나 둘 멀어져갔다 옆에서

하나 둘 떨어져갔다 곁에서

상처였기에 흉터이며

달궈졌기에 강인함이라 생각한

어리석은 한 소년이 있다

 

하지만

지긋이 지나간 열다섯 시간의 교수는

지그시 속삭인다

흔들림이라고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이곳에서 저곳이 되어버린 성숙

 

견고한 고목은 착각이었고

순수한 목근은 진실이었다

 

날아간다 분처럼

다가온다

흔들림으로

 

열 번 백 번의 흔들림은

한 번의 견고함을 만들고

천 번 만 번의 흔들림은

하나의 성숙을 낳는다

 

서글픈 자각

나무 푯말에 다가선다

 

찬란한 정원

그리고

삭막한 황야

 

두 갈래를 맞이한 소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달려간다

당당히

황야로

 

찟김과 아뭄의 반복

그리고 성숙







-시를 노래하는 군인 병장 강병효

-이메일 : qudgy0825@naver.com

-연락처 : 010-2928-3208

-군생활을 하면서 느낀 여러 감정들을 노래했습니다. 좋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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