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
화창한 날씨에 맞이하는 소나기와 같이
느닷없이
백지같은 새하얀 마음에
새까맣게 먹칠을 하더라
허겁지겁 달려가도 떠나가는 버스와 같이
허망하게
물에 빠진 생쥐와 같은 몰골에
붉은 빛 여운만을 남기더라
그럼에도
생명줄은 간신히 붙잡고 있는 노인과 같이
새빨간 저녁노을 공허하게 움켜쥐고
거무접접한 종이를 지우개로 벅벅 문지르더라
<花中花>
잿빛 하늘 아래
흩날리는 빠알간
꽃잎은 누군가의
발 아래 짓밟히고
허공에 떠올라있는
저물어가는 해는
어찌나 황홀하고
외로운지
이 내 심사
그에게 전하려
하니 허공에
산산이 흩뿌려진다
<섭리>
앙상한 나무에
화사한 꽃이
피듯이
공허한 마음에
빛나는 그대가
들어와
계절이 지나면
색바랜 꽃이
지듯이
시간이 지나니
변한 그대도
떠나네
<회소 回蘇>
퍼엉펑
터져라
나를 감싸는
모든 잡다한 것들이여
터져라
콰앙쾅
부서져라
나를 맴도는
모든 부정한 것들이여
부서져라
처얼썩
덮쳐라
나를 정화하는
시리도록 파아란 파도여
나를 덮쳐라
<원앙>
너는 봄이다.
따스히 내리쬐는 햇살아래
형형색색 꽃들이 피어나는 곳
그곳에 너는 있다.
나는 겨울이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아래
새하아얀 서리가 끼어있는 곳
그곳에 나는 있다.
눈의 사막을 지나서
물로 만든 십자가를 매고
그곳에 머무르는 너와 같이
나는 여름으로 가리
꽃이 지고 낙엽이 되어
찬바람이 몰아치는
가을이 올 때
그땐 내가 너를 보듬어
다시 봄까지 견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