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시 공모ㅡ부모外4편

by rainshin posted Apr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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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모

 

당신이라는 지붕 아래에서

나는 눈을 떴다

그대가 우는 것을 보고

나도 눈물을 흘렸다

그때 그대의 눈물까지 다 흘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대는 더 단단해졌다

왜 몰랐을까 단단해보이던 그 장벽 안에

가녀린 아이 하나 숨 쉬고 있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밤중에 지붕 사이로 톡톡 내리던 이슬 비

그대의 눈물이었단 걸.

시간이 흘러 나는 그대에게 못을 박았다

거기에 옷을 걸었다

거기에 돈을 걸었다

거기에 푸른 장미를 걸었다

거기에 그대의 심장을 걸었다

그대는 웃었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다

 

웃는 그대를 보며 나는 떠났다

오랫도안 그대를 잊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대를 다시 찾아갔다

그대 앞에 서자 내 발밑은 젖어 들어갔다

그대는 웃었다 이제는 안다

그대가 괜찮지 안다는 걸

 

그대에게 박힌 못을 하나씩 빼낸다

못을 뽑을 때마다 나오는 붉은 선혈

미안하다, 그대도 사람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선명한 상처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너무 늦게 알았다

내가 그대보다 나이를 더 빨리 먹을 수 없다는 걸

그렇기에 그대가 나에게 준 것

절대로 돌려줄 수 없다는 것.

 

그대 이제 편히 쉬어라

내 지붕 아래에서


2. 어른

 

내가 눈을 뜬 곳은

캄캄한 푹신함의 한 가운데

어느 날 빛이 찢어져 들어왔고

나는 황홀함에 눈시울을 붉혔다

 

들판에 서게 된 나는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내리는 비가 달든 쓰든

새로움에 몸서리를 쳤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얇은 비닐을 가져왔다.

나의 첫 지붕이었다

비닐은 어느 정도의 비를 막아줬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엔 찢어졌다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천장에 비닐을 쳤다

 

더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벽을 세웠다

이제 나는 더 단단해져야 한다

단단해져야만 한다

더 이상 비를 맞을 여유 따윈 없었다

빗줄기는 매몰찼고

나는 지붕을 세웠다

빗줄기는 들어오지 않았고

빛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둠 속에 홀로 남게 되었다

이젠 지붕이 필요 없어졌고 나는

쏟아지는 햇살을 맞았다

 

내가 눈을 뜬 곳은 캄캄한

푹신함의 한 가운데

그렇게 빛이 찢어져 들어왔고

나는 황홀함에 눈시울을 붉혔다


3. 슬픈 기억들에게

 

분명 아름다운 장미였다.

나는 한 손에 그 녀석을 껴 안았고

철철 흐르는 피는 멈추질 않았다

손에 촘촘히 박힌 가시들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꽃잎을 감싸쥐었다

순수한 부드러움에 피와 눈물이 멈췄다

그리고 새살이 돋아났다

나는 그제서야 내 바보같은 행동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장미를 어디를 잡을지 결정하는 건 나라는 걸

장미는 부드럽거나, 따끔하거나, 달콤하거나,

뭘 선택하든 나의 몫이다

가시가 보기 싫어 장미를 모두 없애버리는

바보같은 짓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꽃밭에 꽃 한 송이 키우지 않고

황무지로 살아갈지

꽃밭을 가꿀 것인지

결정하는 것 또한 나라는 거


4. 과거, 미래, 지금.

 

새하얗게 얼어붙은 대지 위에

그 거대함에 조그마한 흔적을 남겨본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오직 내 발자국만 본다

 

그것조차 한 걸음 떼고나면 보이자 않아

나는 눈물이 흐른다. 얼어붙은 눈물에

앞이 완벽하게 가려지자 몇 번을 넘어졌는지 모르겠다.

눈덩어리에 코를 세 번째 박았을 때

나는 바닥을 더듬었다

 

겨우 눈을 뜨고 손에 잡힌 그것을 보았다

해골이었다. 길을 가다 죽어버린 건지.

나는 또 다시 두려움이 솟구쳐왔다.

미친 듯이 달려간 나는 또 어딘가에 다다랐다

 

그곳은 동굴 속이었다.

그곳은 그 어느 곳 보다 추웠다.

그곳은 그 어느 곳 보다 따뜻했다.

그곳은 내 눈이 마르지 않게 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나는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 동굴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을 때

그 아이와 마주쳤다.

 

그아이는 한없이 아름다웠다.

눈송이같은 그 눈처럼 순수했다.

그리고 이내 차가운 북풍이 대지를 녹였고

나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웃음을 보며 나는...

나는 그냥...

손을 뻗었을 때 아이는 햇살에 녹아버렸다.

어느새 눈이 다 녹았다. 나는 발걸음을 뗐다.



5. 2018416

 

오늘은 416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다. 나는 옷을 걸쳐 입고 나갔다

아이가 물어본다 왜 봄인데 눈이 오냐고

아이는 옷도 얇고 봄에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그러고선 으, 추워 반복한다.

그러게, 얼마나 추울까

그러게, 얼마나 추웠을까

아이는 빨리 집에가서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한다.

그리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날, 그들이 두려웠던 이유는 뼈를 에는 추위와

배고픔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추위와 배고픔이 두렵지 않다

어쩌면 그들이 두려웠던 이유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시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굳어버렸을 때

대한민국의 시침 또한 굳어버렸다

 

아이는 그래도 눈이 오니까 좋다고 한다

나는 웃으며 눈사람을 만들기로 약속했다

 

아이야, 이건 그냥 눈이 아니야

이건 그들의 눈이야

그리고 그들의 눈물이야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 날엔 눈이 내릴거야.

그럼 또 눈사람을 만들자.

이 눈을 외면하고 방구석에 틀어박히지 말자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 날엔 눈이 내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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