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서-
1. 폐품이 가는 길
2. 나뭇가지 잘린 날이 시집가는 날이다
3.그리움
4.청자
5.미투
1.폐품이 가는 길
김용주
지나온 일들이 형상되어
보따리 안에 가득 채워진 채
오르는지 내리는지
온통 지붕을 만들며
비탈길이 걸어간다
무게 실린 짐이 빙판에 밀리듯
찌그러진 잡다한 추억들이
산을 만들고 길 내며 나온다
발걸음은 세월의 무게만큼
느릿느릿 걷는다
고통의 긴 한숨을 내뿜으며
깡마른 주름에 누런 혈색이
손에 쥐여 준 구겨진 낡은 지폐 몇 장
세는 눈길이 등짝에 달라붙은 배를 풀어낸다
오랫동안 몸부림치며 피워낸
꽃잎 위의 따가운 봄빛
바람이 마르고 시들게 빨고 있다.
2.나뭇가지 잘린 날이 시집가는 날이다
밤낮으로 눈 불태워
굵은 핏줄 세운 날들
손끝으로 셀 수 없다
거꾸로 돌려놓은 시계 바늘
눈뜨지 않은 공간에서도
무심으로 한 방향으로만 돌아간다
물에 잠기어
실뿌리 내린 메기수염
하늘빛 만난 자리
새록새록 힘 모은다
견디어 낸 아린 세월
옹이에 쓸어 담고
속살 밀어내며 용쓴 날들
흐르는 시간 위의 걸음걸이
가는지도 모른다.
3.그리움
봄바람 실어
비탈길 석축 덮어 내린
개나리 황금물결 위를 걷고
목련나무 흰 비둘기 떼
날갯짓 반기는 곳에 난다
붉은 입술 쭉 내민 철쭉
식탁 기웃거린 쑥 민들레 냉이
호수너머 아지랑이 부른다
상큼한 꽃향기
뒷산 언덕배기 두릅 새순
나무그늘에 말린 어린 야생 찻잎
정담 나눈다
훈풍 불어오면
산감아 도는 계곡
물 위 그늘 평상에
마음 내려
차 한 잔에 비워 내고
또 한 잔에 꿈을 실어
천리 길도 단숨에 넘어 간다.
4.청자
신의 손길인가
도공의 혼불인가
토화의 숨결이 흐른다
고요히 깊어지는 푸르름
운학이 당초 위를 날으고
향기로운 국화가 만개한다
가녀린 선 따라 이뤄지는
완벽한 여백의 조화로움
꾸밈없는 단아한 자유
누가 손 대어
꽃을 내릴 수 있겠는가
시린 눈 감추려
시공간의 침묵만 흐른다.
5. 미투
그 누구의 허락도 없이
부끄럼도 없이
바람처럼
살그머니 어루만진다
향기 따라 찾아드는 벌나비
수줍어 가슴에 품은 사랑
살포시 다가와 속살거리며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훔치다 끌어낸다
행여
누가 알까
피멍 진 세월
이제는 아린 기억 들춰내고
눈물 옷 벗어 던지며
맨몸으로 하얗게 노래한다
* 김용주 010-3242-6389 광주광역시 북구 송월로49번길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