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삶의 끝이 어디인지
얼마의 시간이 주어진지
그 아무도 알 수 없는 인생의 종착역은
남겨진 사람들의 곡소리의 시발점이다.
남겨둔 마음은 아니 가져가고
고인 가는 발걸음은 가벼웁지만
빈소에 맴도는 향은 무거웁다.
한마디라도 건네었으면 좋으련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후회는 눈물에 묻고
가시는 길 편하라 말하면서도
미련이 발목을 잡는다.
저승 가는 길은 어여뻤으면 하고.
수의 자락이 닿는 길목은
국화꽃 향기가 맴돌았으면 하고.
국화향 넘치는 가실 길에
눈물은 소매에 훔치고
입가에 미소만을 머금으리.
연
우리 인연이 여기까지 인걸까
자꾸만 빗겨 나간다.
시간이 왜 그리도 안맞는지
그 안맞는 것은 시간인지 아니면
너와 나의 마음인지
꼭 끊기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인연같다.
너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살아가고
너 또한 내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니
지나치지 않으려 어떻게든 엮어봐도
지나쳐가는것이 지금의 우리인가 싶다.
그 인연의 끈이 돌고 돌아 어쩌면
지구 한바퀴를 우주 한바퀴를 돌아
끊기지 아니하고 다시 돌아온다면
얇아졌다 한들 그만큼 질긴 인연이겠지.
애초에 얇디 얇은 인연이었다면
열걸음만 나아가도 끊어질 실이리라.
시간이 흘러 너가 내 마음과 같다면
그 실은 낡지도 녹슬지도 않고 처음과 같이
베일듯한 새로움을 갖고 있을것이니
잃지 말고 잊지 말고 그 실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다보면
그 끝은 나이니 걱정말고 찾아오기를.
너무나 어린 너에게
너무나 어린 너는 아직 세상을 잘 몰라.
아프면 아프다고 외치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고.
그런 감정 표현을 스스럼 없이 세상에 외치고.
어느순간 너가 정말 어른이 되면
그 감정들은 마음 한 가장자리에 꼬옥 숨겨두어야한단다.
세상은 매번 즐겁지 않고. 기쁘지 않고.
너를 바라봐주지도 않으니까.
그러니 그 역경과 고난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스스로 이겨내렴. 나는 너를 응원해.
어린 날의 너에게.
새벽
자정을 넘긴 어느 새벽
밖은 소나기의 향으로 가득하다.
나는 매일 밤 머리맡에 있는 창문을 열어
그 날의 기분을 마신다.
매번 다른 밤공기가 그 날 하루의 기분을
대신해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
오늘은 슬펐구나, 오늘은 행복했구나 하며
누구인지도 모를 3자에게 말을 걸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 짓다가 나만의 기분에
또 그 감정을 맞추게 된다.
오늘의 너의 감정은 나와 같구나 하고
나지막히 말할때 온 사방이 고요해지고
너와 내가 같은 꿈을 꾸는 것 같더라.
가치
울려퍼지는 너의 그 깊은 목소리에
산 속 아득히 숨어있던 별들이 깨어나는구나.
깊은 곳 자리 잡은 그 고요함이
네 작은 몸짓에 부지런히 잠에서 깨어
귓가에 속삭인다.
너는 어둠이고, 빛이다.
어쩌면 자그마할지도 모르는
그 빛이 세상을 깨우고
생명이라는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크고 작은 것들이
너의 그 여린 빛에 기지개를 피우니
너가 가진 모든 것들이
어쩌면 생명이고, 소리이며,
세상 전부일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