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회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대화 외 4편)

by 유기오 posted Jun 10,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대화

아름다운 너의 모습 속에
얼마나 더 아름다운 것이 숨어 있을지
그 안을 눈으로 보지 못해 슬퍼질 때면
너는 나를 위로하려는 듯
너는 내게 말을 건다.

너의 머릿 속, 너의 마음 속
그 깊은 것을 넌 내게
역시나 너의 깊은 곳에서 꺼낸
역시나 아름다운 너의 음성으로
들려준다.
보여줄 수 없으니 들려준다.

음성을 타고 날아드는 너의
뜨거운 숨결이
우리 사이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운다.
차가운 공기는 밀려났다.
녹아내린다, 얼어붙은 시간.
세계는 이제
빙점을 넘어 비점으로
겨울을 지나 여름으로

흐른다.
너의 혀끝이 나를
흠뻑 적시며
매마르고 얼어붙었던 내게도
뜨거운 강물이 흐른다.
너에게 흐르는 큰 강물을 보고
나에게 흐르는 붉은 혈액을 느낀다.
우리는 흐른다. 두 강물이 만나
한강이 흐른다.



향기


쾨쾨한 지하철 냄새
뜨거운 도심의 가스 냄새
시골 전원의 거름냄새.
-삶은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즐거운 추억에선 그리운 땀 냄새
슬픈 과거는 눈물 젖은 냄새
그 모든 냄새가 몸에 베어들어
인간의 냄새는 삶의 냄새.

너의 곁을 스칠 때마다
코 끝으로 전해오는
그리움 냄새, 눈물의 향기.
네 품에서 나는
너의 삶을 맡는다.
너의 세상을 품는다.

취해있는 그대의 향기처럼,
그대의 삶을 나는 사랑한다.



고해의 바다


''세상은 고해의 바다.

 고해는 누가 느끼나
 우리가 느낀다.
 누가 이 고해의 바다에 떠다니나
 우리가 떠다닌다.''

-도대체 누가 그래?
 바다는 넓디 넓지만
 우린 육지에 살고있잖아?

자,
우리의 몸은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다니
(과학시간에 분명히 그렇게 배웠다)
그렇다면 세상이 바다인 것이 아니라
내가 바다인 것이지.
육지에 살아도 나는 바다.
오늘도 온갖 물이 쏟아져 내리는

내가 그 고해 덩어리일 뿐이야.




백태

그 순백을 부러워 말라.
그 안에 잠든 것은
순결이 아닌 불결.
밑으로 더러운 것을 쏟아내면서도
쏟지 못해 남은 찌꺼기.

가장 더러운 것은
가장 요란한 것.
아름다운 말 몇마디로도
차마 갈출 수 없으니
차라리 입은 넣기만 할 뿐
아무것도 뱉지 말아라.

언젠가
가두어놓은 혀도 썩고 썩어
그 악취마저 모두 썩어 사라진다면,
텅 빈 무색의
칼도 바늘도 없는 고요 속에서
무취만을 뱉으리라.



중독

그 놈은 불쑥 찾아왔다 내가 갓 스무살이던 어느 날 스스로를 우리 아버지의 친구라고,

아니, 우리 할아버지의 친구였던가

그 녹색 얼굴을 마주하면 목구멍 깊숙이 쓰디쓴 물이 흘러내려 도저히 오래 쳐다볼 수 없었다 외면해도 매일같이 찾아오는 그 얼굴에 쓰디쓴 냄새도 익숙해지겠
,
아니, 익숙하지 않던 때가 있던가

-너를 만나

입에는 쓰디쓴 물이,

가슴에는 망각이 흐른다.
내일이면 또다시
달콤한 참회의 잔을
홀로 비우겠지만.

두 발은 점차 구름 위로 올라간다 시간은 핏빛으로 거울 속 얼굴은 녹색으로 변해간다 언젠가 아버지에게서 보았던 듯한, 색깔.
날마다 무른 정신을 붙들며 참회의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참회. 오장육부에 바치는.
-감당치 못하는
한강을 삼켰구나.

죽여야 한다 저 녹색 낯짝을. 인간을 구름 위로 올려보내는, 이 두발을 땅과 갈라놓는, 색깔을.
공원 정자에 기대에 그 녹색 면상을 노려보다 냅다 땅바닥으로, 내리꽂는다. 유리 파편이 산산이 흩어져 나아가고 깨진 머리통에선 쓰디쓴 투명한 피가 벌컥벌컥 뿜어져 나와 내 뱃속과 같은 한강이 흐른다, 시멘트 바닥 위로.
승리의 밤.

-이제 취하러 가자






(허경석/ 010-6254-8059/holmes5978@naver.com)


Articles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