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회 창작 콘테스트 시 부문 - <허물> 외 5편

by 김지원 posted Jul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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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

죽고 싶어 계단을 밟았을 때

저만치 떨어져 있던 매미 같은 나방 같은

무언가의 죽다 만 허물을 보고서

그것이 무서워 죽지 못해 발길을 돌리는

오늘은 하찮은 하루였습니다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교실은 제가 있을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5층의 수학실에도, 상담실에도 사람이 있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5층의 음악실도, 악기실도, 옥상도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잠겨진 문을 굳이 한 번 흔들어 확인할 때

거절당하는 것 같아 서럽게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웅크리고 흐느끼고 싶었습니다

아무데도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교실로 돌아왔을 때

환하게 밝혀진 교실 문을 열었을 때 서러웠습니다

내 안의 나는 서럽게 울었지만 나는 웃었습니다

울 수는 없었으니까요



순간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모두를 잃어 한없이 가라앉을 때

이리저리 떠도는 것마저 그만두고

한없이 가라앉을 때

다만 저린 팔과 눌린 얼굴을 가지고

바둥거리지도 않고

고통스러워 하지도 않고

그저 있을 때

나는 내가 죽었음을 안다

나는 내일 살아남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순간이 죽음이자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이 생명이다.






나비


내가 주저 앉아 있을 때


나비가 날아와 앉았다.


나비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물었다.


그러자 나비는 나를 가리켰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했냐고 물었다.


그러자 나비는 나를 가리켰다.


나는 나비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나비는 꽃을 가리켰다





새벽과 초저녁


내가 느끼는 황홀감은


빛이 없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고


빛이 있기에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하루에 두 번


새벽과 초저녁에 내리 쬐는 것.


아침이 밤이 되고


밤이 아침이 되는 황홀한 빛깔이여.









빛은 원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내가 보는 것은 환상이며 하룻밤의 꿈


춤추는 무희들의 세계 오묘한 색의 향연


나는 보는 것을 잡을 수 없고


나는 잡은 것을 안을 수 없습니다


폭풍 속에 춤추는 나무들은 고요함이며


고요함에 잠긴 나의 마음은 환란입니다




작가 김지원

Email : jwta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