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신년사(新年思) 외 4편

by 무위자연 posted Aug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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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新年思)



벽시계 아래 매달린 새 달력이 말한다

운명에 대해

살지 않은 일년치의 날들에 대해

달력에 없는 날은 살아낼 수 없다고

7열 전투대형으로 선전포고할 때

달력은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하루살이에게 달력은 무엇으로 보일까, 생각하다가

감정은 규칙과 뒤섞이고

숫자에 갇힌 까만 날들이 꿈틀

허물어지는 오와 열

내일이 오늘로 쏟아져내려

오늘은 바다가 된다

망망대해 떠다니는 날 그리고 가라앉는 날


심해를 잠영하던 혹등고래 한 마리 솟구쳐 올라

동동 떠다니던 날들의 머리통을 덮친다

고래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연과 숙명

고래는 다시 바다 속으로 


시계만 보던 하루살이 

조바심으로 하루를 전부 늙어

일용할 시간의 마지막 초침 소리

남은 한 호흡 저며내는 순간

허공을 젓는 최후의 날갯짓은 극도로 현명해지고

어렴풋한 전생의 기억

비로소 하루살이,

달력을 본다






내가 쓰는 시는



감정을 앞세운 쌍욕


말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다가

알량한 창의력을 추제 못한 지랄발광


악몽에서 깨어나 찾는 머리맡 자리끼


호흡곤란 때 받은 처방전

잦아드는 내 심장 제세동기


모국어와의 근친상간

상상임신 헛구역질


뉴런과 뉴런 사이 새로 내는 길


강 건너 대답 없는 낯선 이에게 말 걸기


문신






낮달



해와 달은 서로

서로의 간격을 좁히려

낮과 밤

자신의 곁을 내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거고

일식은 누가 누구를 가리는 게 아니라, 실은

해와 달이 두 손 마주 잡는 날

그들은 서로 만나기 위해

365일 죽은 힘을 다해

달려가고 있었어


해 지기 전 달 뜬 날

낮달 뜬 날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



작년 아내는 교통사고로 세상 그만두었다

세월 흐르니 봄이 왔고

더이상 아내 생각 나지 않았다


아무도 아침에 깨워주지 않아 지각할 때말고

식탁에 홀로 앉아 김에 싼 밥을 간장에 찍어 먹을 때말고

신문에서 고속도로 연쇄추돌 사망사고 기사 읽을 때말고

회식 술자리가 새벽까지 이어져도 전화 한 통 오지 않을 때말고

야근 한 귀가길 불 꺼진 집 창문 볼 때말고

산책 나가 꽃놀이 나온 가족들 지나칠 때말고

주말에 영화 보다가 혼자 울 때말고

집에서 혼자 술 마시며 오열할 때말고


그럴 때말고 더이상

아내 생각 나지 않았다






에피쿠로스의 정원



포도주는 없다


병엔 물이 그득했고

빵과 야채 그리고

한 줌의 올리브


군중 속에서 극지를 탐험하던

에피쿠로스는 결국

잔치를 벌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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