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영악한 동물 외 3편

by 다한이 posted Aug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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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악한 동물

 

승객은 명확했으나 도착지는 모호했다

초점 잃은 노선의 어색함의 몸을 맡겼고

고요히 줄렁이는 좌석에 몸을 뉘었다

 

어디서 출발하여 어느 곳으로 가 닿는가

 

관자놀이에 대못이 박힌듯 찌르는 두통은

고통을 배송했고 맥 없이 손을 뻗었다

 

명확이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상자

아픔의 수취인은 오롯이 나

서명하는 것은 숙명

 

달리는 기차에 덜컹거리는 소음

그리고 그 안에 잔잔함

 

무엇으로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내 몫이고

선택지 위에서 망설이다 펜촉이 부러졌다

 

누려본 적 없는 허상은 무엇을 근거로 실재하는가

 

그리해도 끝없는 고민의 반추, 망상 속에 갈등

흐드러지는 봄바람 한 줌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줏대 없는 사춘기 같은 정서

 

차라리 모든 것이 잿가루 되어 사라지길 바라는

그 와중에도 나의 존재는 온건하길 기도하는

은연중 당신도 나와 같길 앙망하는

실로 영악한 동물

 

 

 

연륜

 

당장이라도 두 동강 날 수 있는

난파선을 타고 있습니다

 

시선은 굽이치는 파도가 아닙니다

금이 가고 있는 바닥이 아닙니다

 

뭍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시끄러운 곳에서 고요함을 훑습니다

삼삼한 맛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우울함 속에 즐거움을 찾습니다

쓰지만 되새기다 보면 단 맛이 납니다

 

보내기 위함입니다

수평선 너머로 밀어내기 위함입니다

 

 

 

전래동화

 

같은 적도 아래 같은 시분초를 두고 살아가는데

고개를 꺾고 올려 본 하늘구름의 모양은 많이 달라

 

이곳의 길고양이들은 말라 갈비가 보여가는데

그곳의 길고양이들은 때깔 좋게 살이 뒤룩뒤룩 쪘다지

 

여기는 농약을 치지 않고서

달콤한 토마토를 거두기에는 하늘에 별 따기라는데

그곳의 흙밭에는 은하수가 펼쳐지고

달달한 과즙에 사방으로 퍼지고 있다지

 

사람 사는 곳이 거기서 거기라고 하는 말

나는 진짜 잘 모르겠더라고

 

토끼를 이긴 거북이는 한평생 낮잠을 자지 못했대

저만치 앞서서 쿨쿨 자고 있는 토끼의 궁둥이를 보고

불안함에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는 거야

 

혹시나 토끼가 야속한 선잠에서 깨어버리면

또 미친듯 따라가야 하니까 말야

 

그런데 대부분의 토끼는 잠이 없더라고

심지어 토끼도 자기가 빠른 걸 아니까

달리는 걸 즐기더라는거야

 

허무함에 몸을 숨겨버린 거북이는

한참 동안 세상 밖을 나오지 않았대

 

제 몸을 지키던 갑옷이 도리어

외로운 관뚜껑이 될 줄도 모르고 말이야

 

 

닻을 내렸습니다


그곳에 닻을 내렸습니다

심해 깊은 곳으로 무거운 쇳덩어리를

뒷 생각하지 않고 밀어버렸습니다

 

언젠가 끌어올려야 할 날이 오겠지요

살가죽이 들뜬 손에 물이 괴도록

끙끙거려야 할 날이 올지도요


사실 그런 날을 알기에 닻을 내렸습니다


이제는 올릴 수 없다는 변명과 함께

꼬질한 나룻배를 당신에게 영원히 정박하려고

굳이 그곳에 닻을 내렸습니다

 

 

 

성명 : 김다한

이메일 :  dh0577@naver.com

연락처 : 010-2239-0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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