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창작콘테스트(장주의 꿈 외4편) 수정.

by Asynia posted Sep 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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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주의 꿈 / 이은택 Asynia


살면서 많은 잠을 봤지만

아직 자살하는 꿈은 기억 속에 없어

자궁을 헤집다가 뱉어진 꿈은 꿔 봤다만

죽음은, 죽음마저

나에게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던 걸까


땅바닥에 엎드려 우는 새는

아직도 꿈을 쪼아먹고 있나 봐

먹다 남은 개미떼가 바닥에 한가득이야


오늘이야말로 만찬,

죽음을 갉아먹는 개미와

생명을 슬퍼하는 날개가 점점 흐릿해져


죽은 시인들의 날랜 부리는 과연

살아서 죽음을 썼던 것일까

죽어서 싦을 썼던 것일까




소돔과 고모라


태고의 고동이 온 산을 사무친다

뜨거워지는 몸과 도망치는 새의 절규

벌건 생명이 고요히 땅을 적신다

몇 억년 전 우릴 낳으신 어머니는

아직도 살아 있어 열기를 잉태하신다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깊은 동굴 속에서 을리는 활화산의 떨림과

못 다한 생명을 낳는 슬픈 산통에

우린 너무 두려워 떨기만...



솔방울의 노래

바람 불 때면 푸른 솔잎이 날 찔러댄다
부드러웠던 과육 위로 딱지가 다 앉았다
굳어버린 혈액은 몸 속으로 침투해
심장까지 딱딱하게...

다른 열매들은 스스로의 내장을 가지고
달콤함과 시큼함을 내보이는데
내 갑골은 마치 나무줄기를 붙인 듯하다

뼈까지 앙상하게 밖으로 드러난
씁쓸한 점액이나 붙은 해골

바람이 베어간 표피의 흔적도 다 썩어 땅에 묻혔고
썩지 않을 외로운 인생만이 매달려
겨우내 하얗게 익어가고 있다




감자


사랑한다는 건, 땅에 묻히는 것

굵은 덩어리로의 삶을 포기하고

잘게 잘게 으스러져

네 가슴에 심기는 것


국물에 삶긴 고무가 되기보다

누렇기만 한 단단함을 깨고

신록의 심장이 되어 썩어가는 것

그것이 감자가 감자에게 맡긴 최후의 유언이다


꽃 필 무렵, 초록과 하양의 색깔조차 모른 채

벌과 나비에게 순결을 내어주고

홀로 깊이 침전하고 매몰되어


여름을 견고히 지탱하는 줄기를

인사도 없이 이제 그만 올려보내고


매미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한여름

폭염 아래, 그 깊은 무덤 아래서

홀로 동면을 맞이하는 감자






밤 9시 러시아워의 끝자락
그들은 낮은 곳에서 쉬지 않고
온몸을 비비며 달빛을 더듬는다

우리의 소음은 그들의 구애
이내 그 사랑에 귀를 기울이다
잠이 든다

밤에는 잡히지 않던 생의 소리가
아침까지 발꿈치를 울리운다

해가 오르면 낮아지는 그들의 발목
있는가 돌아보면 사라질까 두려워
책상에 앉아 다리를 떨며
여자는 귀뚜라미를 잉태한다

태아의 생명을 먹고 자란 산모는
두 손 가득 새벽달을 끌어올린다

발길질하는 행복에 잠겨
고요히 웃옷을 벗고
찌르레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잠이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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