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창작콘테스트 [논] 외 4편 응모

by 쓰레빠신어 posted Sep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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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1.

 

 

녹색의 푸른 물결이 일렁이고

참새가 재잘거리며 뛰어 노닐던

드넓은 아버지의 논을 본다.

 

한들한들 봄바람을 맞으며

차곡차곡 낱알을 키워가던

아버지의 어린 벼가 아른거린다.

 

키 작던 지난날의 아련한 모습과

조그맣던 알갱이의 옛 된 얼굴은

나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사라진다.

 

푸름과 생명이 가득했던 논은

어둠과 죽음이 가득한 사막이 되어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창백한 갈색의 볏짚이 뉘어있고

어둠과 죽음이 뒤덮은 아버지의 논은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행하고 쓰러졌다.

 

차디찬 겨울을 굳건히 버티고 이겨내면

내년 봄에 또다시 푸른 물결이 일렁이고

참새가 재잘거리는 생명의 논으로 되겠지.

 

가을이 무르익고 겨울이 다가오는 세상

초가집 굴뚝위로 핀 하얀 연기를 뒤로한 채

아버지의 논은 조용히 겨울잠을 잘 채비를 한다.

 

 


작품 1.

 

새참

 

꼬르륵, 꼬르륵

배에서 신호를 보낸다.

 

김매기, 퇴비주기

잠시 멈춘다.

 

저 멀리, 저 멀리

어머니가 보인다.

 

머리에는 큰 쟁반이

손에는 주전가 있다.

 

국수 냄새, 김치 냄새

코가 살랑살랑 간지럽다.

 

막걸리 한 사발, 김치 한 점

얼씨구! 콧노래가 나온다.

 

호미질로 분주하던 밭은

잠시 여유로움을 갖는다.



작품 1.

 

 

하얀 그림자

 

 

녹음이 우거진 대지는 생명의 용트림이요

해초가 우거진 바다는 생명의 아기집이다.

 

출가한 아들을 위해 오늘도 깊은 바다에서

살갗이 찢기는 아픔을 참고 거침없이 물질한다.

 

녹음이 우거진 지난날의 모습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겨울도 아닌 한여름에 새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있다.

 

껍데기만 남겨진 조개의 주검에서 나온 흰 가루가

제주 앞바다의 온기를 다 빼앗아버렸다.

 

일제히 멈춰버린 세상에 온 것 같은 적막감이

어머니의 생활터전을 휘감고 있다.

 

몇 번이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물질에도

어머니의 사랑 주머니는 빈 소리만 요란하게 들린다.

 



작품 1.

 

느림의 미학

 

역동적인 우리들의 사무실에

따다닥 따다닥

분주한 손놀림의 날카로운 노랫소리는

하얀색 눈 덮인 종이 위에

검은색 낱말이 쉼 없이 조각하고

시안을 주문한

털 많은 털보 아저씨의 독촉 전화에

오늘도 아이와 놀아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빛의 속도로

빠르게 빠르게 척척

우리의 일들이 처리되면

더없이 값진 선물을 얻은 것 마냥

우리의 상사 얼굴에는 웃음꽃이 핀다.

 

하지만

빛의 속도로

빠르게 빠르게 분주히

움직이며 일할수록

시간은 더욱더 천천히 흘러가

더 멋진 우리의 미래가

더욱 더디게 다가오도록 한다.

 

빠름의 역설이라고 할까?

빠름은 더욱더 느림을 만든다.

 

빛은 빠름의 역설과 느림의 미학을

우리보다 먼저 깨달은

신이다.

 

신에게 다가가 한 수 배워 보는 것이 어떠한가?



1.

 

영평천(永平川)

 

 

광덕산 서부를 뒤로하고

유유히 풍혈산을 휘감아

포천시를 흐르던 생명줄은

백운산 물과 어우러져

영평팔경(永平八景)을 형성하며

부드럽고 날카로운 은은한 향기를 뽐냈다.

 

어린 시절 물장구치던 추억

어린 시절 퉁가리 잡던 추억

물줄기 따라 기억 속을 흐른다.

 

고향 가는 길 잠시 들러 바라보니

한탄강을 향해 질주하던 기세는 사라지고

탁류(濁流)가 되어 가냘프게 흐른다.

 

탁류가 되어 버린 영평천은

기력이 약해지고 젊음이 사라진

우리의 사랑스러운 부모님이시다.

 

든든한 기둥이 되어 오던 아버지

섬세한 등대가 되어 오던 어머니

이제는 기둥과 등대의 도움이 필요하다.

 

기둥과 등대가 되어드리기 위해

영평천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리니

저 멀리 아버지, 어머니가 보인다.

 


eliteah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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