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1. 여름휴가
이태열
뙤약볕
해변 가 파라솔 소옥
그늘과 나
경계 밖에는 뜨겁다
바다 속에 몸을 맡기면
파도가 이래저래 흔들어
물속은 차가운 물과 더운물이
떼 지어 다닌다
나가고 싶지 않은
선글라스 밖의 세상
맨살을 숨기고
구름으로 나이를 가려
시간을 소나무에 꽁꽁 묶어놓고
하루를 백년처럼
달콤한 휴가를 위해
초시계를 술 먹여 잠들게 하리라
2. 여름이여
이태열
내가야
너 가여
애쓰려 하지 마소
지고나면 뭐 있을꺼냐
살이든 뼈든
그 넘의 허구인 걸
뒤척이고 넘기고 여쭤보면
결국은 뜯겨져 없소이다
먼 산 쳐다 보지마소
아닌 산에 메아리 물어 본들
들을이 없으니
멈추어 너를 위해 춤추고 싶소
줄이고 늘인다고 마냥 여신일까
깜빡이면 어느새 가을인 것을
여름이여 행복하소서
내년에 그 여름 또 있소이까
3. 술 한 잔
이태열
술 한 잔 마셔서
기분이 좋아진다면
짜릿한 쓴 맛을 느끼고 싶다면
엽전 몇 푼 내고 나를 흔들어봐
머릿속에 생각들을
무겁게 끌고 다니지 말고
하나씩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
속이 후련해 질 때까지 마시는 거야
옆자리 비워있어
왼손 오른손 바쁘면 어때
영원한 내편 막걸리가 있잖어
한 병도 있고 두병도
떨어지는 빗소리를 안주 삼아
인생을 젓가락으로 휘휘저어
한잔 마시고 채우고
아쉬우면 세월도 마셔버리는 거야
4. 소나무
이태열
엄마 품을 떠나
솜털 속 작은 씨앗
바람에 흩날리다
머문 자리 어느 바위 틈새
거기밖에 머물 곳이 없더냐
뜨거운 햇살 어쩌려고
물 한 모금
풀 한 포기 없는 곳인데
인적 닿지 않는 곳
우러러 볼 수 있는 곳
뿌리 내어 자리 잡고
무럭무럭 네가 주인이더라
넓은 바위 침대 삼아
밤에는 별들 축제
낮에는 운무와 펼쳐진 절경
천국이 이 곳 말고 또 있더냐
5. 북한산 숨은 벽 능선
이태열
남들은 나를 숨은 벽 암등이라 하오
그대는 아시오
토박이 아가씨도
토박이 도령님도 몰랐다 하오
나를 찾으려면
넥타이도 치마도
마음속에만 입고 오시오
내려 갈 때는 머슴이 되어 간다네
평범한 산 같으면서
감추어진 또 다른 매력은 끝이 없소
그 속에서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바위도 지루하지 않게
뉘어놓고 세워놓고 쌓아놓고
여기가 지리산인지
여기가 금강산인지
숲 속에서 길을 잃으면 다 잃은 거라오
결코 나를 가벼이 보지마소
이제 아셨는가 이제 찾으셨는가
내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6. 벌초
이태열
슥삭슥삭 깎는다.
쉬 자란 가지들을 다듬고 자른다
이마에 주름살도 다듬질하여 깎고
입가에 뭉친 잔 근육도 보다듬어 자른다
스트레스도 자르고
지친 몸과 생각들도 자르고
네모가 세모가 행복해 질 때까지
자르고 또 자른다
흰 머리카락을
감추고 젊어져가지만
정영 세월을 염색할 수 있으리까
가끔은 어제의 모습을 덮고
내일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면서
지금은 슥삭슥삭
향기로운 마무리
이순간은 행복하다
거울 속에 당신은 누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