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차 창작콘테스트 시부문 응모 - 외로운 길 외 4편

by 그냥저냥 posted Sep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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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로운 길


시계가 없는 내게

찬 기운이 맴도는 길은 무한의 길이다.

하늘의 색, 해의 높이,

짧게 비추는 달과 별이

그나마 시간의 흐름을 일깨워 준다.


변하지 않는 풍경,

들리지 않는 숨소리,

쓰라린 바람.

그것들은 날 더 외롭게 만든다.



2. 흑심


삐죽 나와 있는 심하나

살구색의 몸에 비해 유독 까만 머리 하나


'왜 너만 까맣니' 하고 물어보자

'제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니까요.' 한다.


'왜 중요하니' 하고 묻자

'나로 인해 글씨가 써지니까요.' 한다.


처음엔 그 답이 이해가 안 되었으나

곰곰이 되씹어 보니 아주 명확한 답이었다.

보통의 백지에서 가장 잘 보이는 건

'흑'이 아니던가.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를 내어주는 심에

오늘도 또 하나 배워갔다.



3. 나무


튼튼한 줄기와

튼튼하지 않은 줄기가

서로를 등지고 가볍게 등을 기댄다.


넓적한 잎과

넓적하지 않은 이파리가

서로를 맞대고 지그시 손을 잡는다.


얇고 가는 뿌리와

얇지도 가늘지도 않은 뿌리가

서로의 몸을 붙여 따스하게 몸을 감싼다.



4. 소라


바다 밑 섬에서 사는 생명은

산호들과 재잘재잘 얘기 나누고

문어 발에 붙어 놀기도 하고

생김새가 닮은 고동과 어울려 지낸다.


바다 위 바위에서 누운 생명은

물기가 있는 곳을 찾아 움직이고

화난 바람에 중심을 잃거나

뾰족한 돌에 찔려 주춤하기도 한다.


커다랗고 긴 막대기에 잡힌 생명은

죽은 척 몸을 웅크리고

몸을 둥글게 말아

나를 내버려 두라며 소심히 외친다.


바다보다 어둡고 단단한 통에 놓인 생명은

소금 맛이 느껴지지 않은

습하기만 한 물방울 속에서

바닷속보단 둔하게 움직인다.



5. 고구마


자주색 옷을 입은 채소.

울퉁불퉁한 브로콜리보단,

질겅질겅한 식감의 가지보단 마음에 든다.

맛은 또 어떠한가.

삶으면 김치와의 조합이 환상이고

구우면 우유와의 조합이 환상이다.

샛노란 속살이 옷을 벗고 드러낼 땐

쑥스러운 김과 함께 입맛을 돋운다.

오늘 저녁으로 고구마나 먹어볼까.








이름: 박민경

이메일: dnfrkwhr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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