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별곡 (別哭) 순서 -
1. 핏빛 도시
2. 자판소리 그득한 대낮에
3. 명철보신에게 썩소를
4. 나는 닭이다
5. 사표
1. 회사별곡 (別哭): 핏빛 도시
덜컹 취익---끽
지하철 문이 열린다.
그 사람.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나를 응시한 채로.
눈을 감아 외면해도 눈에 어른거리는 것이
내 뼈골까지 저리다.
오늘도 무사히.
내가 미워한 만큼
아니,
내가 그대를 사랑한 만큼
나를 피에 물들지 말게 하소서..
2. 회사별곡 (別哭): 자판소리 그득한 대낮에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고 나 그 바닥에 배를 대고 도망가는 글씨를 주워 담는다.
뭐하니라고 너는 묻는다.
난 내 흔적을 키우느라 글씨를 둥그렇게 말아서 멍든 나의 정신을 깨우치려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난 바닥에서 떨어지는 글씨를 온몸으로 막고.
3. 회사별곡 (別哭): 명철보신에게 썩소를
편한 길의 유혹을 물리쳐라.
결국 거기 또한 시끄러운 세상과 같다.
눈 감으면 보이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본인은 손 털고 가뿐히 일어날 줄 아는가? 결국 드러난다.
너의 본성, 너의 성품은 그렇게 수동적으로 숨는다고 끝나는 줄 아는가?
맞서라. 어서 네 머리를 내 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내가 가서 구어 삶아 먹으리..
4. 회사별곡 (別哭): 나는 닭이다
라흐마니노프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누구나 럭셔리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난 그렇게 건방지게 의자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본다.
날개가 있으면 날았을 저 드넓은 고향을
단지 머리 속으로만 상상하며
휘파람을 불어본다.
그래도 난
내 조상은 날았음직한 새의 형상을 하고
서슬 퍼런 고집을 가지고
언제갈지 모를 그곳을 향해 고개를 가로지을 수 있다.
아침마다 지붕 위에서 외친다.
선생님,
저도 이만큼 날았는데
왜 다른 사람은 새라고 부르지 않는거죠?
.
.
.
닭도 새입니다.
5. 회사별곡 (別哭): 사표
찐덕찐덕한 이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며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쉰다.
후덥지근한 이 공기가 온몸을 휘감으며
지난 세월 여기저기서 욕 쳐먹으면서 덕지덕지 들러붙은 지방이
내 숨 한 번에 오르락 내리락한다.
이게 나다.
이게 지금의 나다.
피해서는 안 된다.
숨 한 번 들이마시고 맨 정신으로 지방을 태우고
숨 한 번 내쉬면서 나의 오만 추잡한 몰골을 다리미질로 곱게 편다.
씩씩하게 도리도리 세상을 둘러본다.
아.
드디어 해방이다!
작성자: 최정은
메일: sesilia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