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차 창작콘테스트 시 공모 <여인> 외 4편

by 바람이분다 posted Dec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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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인

      


새 생명의 울림이 즐비한 날

두려움과 설렘은 짝꿍처럼 함께였다

뱃속에 둥지를 트던 소녀가

또 다른 소녀를 품고선

진통을 헤집고 한 녀석의 길을 밝힌다

아이에게 빛을 선사한 가녀린 소녀의 뱃가죽에

흰머리를 남기고서야

새로운 울림이 시작되었다

기쁨의 눈물은 소녀를 묻어주고

여인을 꽃 피웠다

분명 소녀를 잃고 가는 길이다

하지만 봉선화는 이제서야 꽃을 피웠다

 


 

철 거(撤去)

 

 

청록 빛 머금은 정승이 높다

온기를 잃은 아파트를 휘어 감고 선체로

잔주름을 들키고 싶지 않은 너에게

푸른 천막은 마지막 옅은 위로가 되리

나란히 등 돌린 나무도 같고

숨결을 숨긴 도로도 같고

문득 허전한 소란이 이는 건 나뿐인가보다

어둑한 밤마다 핀 불빛도 당연하고

가끔 앳된 화음도 당연하고

곧 먼지로 돌아갈 건물의 잔재도

떠나가는 그림자처럼

옷 한 점 남김없이 시간을 덜어가겠지

곁가지의 고드름이 잎으로 떨어지는 가을의 온기는

어느새 겨울의 시선으로 옮아가다

 


 

보이지 않는 꽃

 

 

잔상을 고이 여민 물꽃이 피었다

빗물의 끈질긴 덧칠이 창가에 물꽃을 피운지 오래

쏟아 붓는 물줄기에 몇 번을 지워도

또 다시 피어난다

차오르는 습기가 안개꽃을 만들면

희미하게 숨죽인 내가 창가에 비친다

잠시 핀 물꽃의 무색한 아름다움을 질투하다가

빗물에 몰매 맞는 창가를 보지 못한 체

나만 슬픈 오늘

도로에 짓이겨진 물방울이

못 본 척 뒤돌아선 연민이 되리라 



 

트레조르 거리

 

 

몽상가의 몫이 남은 거리다

한 편의 꿈이 거리에 걸린 작은 예술 박람회

떨 군 머리털로 그려진

하얀 캠퍼스의 공백은 푸른 가지를 뿌리 내린다

뻗어나간 가지에 피어난 꽃이 질 때 쯤

공백은 사라져간다

거리를 가득 메운 그림이

잔상을 남기고 집을 찾을 때

주인 잃은 그림은 수많은 이들의 상상을 피운다

트레조르는 텅 빈 예술이 깨어나는 거리다

꿈이 시작되는 그 섬엔 어제도 오늘도

현실이란 경계가 부서지고 있다

 


 

  

봉긋 오른 흙내음이 살짝 미운 날

이미 퇴비가 되어버린 꽃망울이 그립다

겨우내 잠이 든 흙 위로 마른 잎이 앉고 얹고

숨은 흙이 피부를 드러낼 때까지

잊힐 잎을 수발 중이다

가는 생명이 밟고 간 꽃잎은 푸른 눈을 만들고

곧 피어나 들녘에 다 녹을 때까지 빛을 먹겠지

들판이 새싹에 새로이 취하면

다음 바람에 향을 더해

같은 계절 속에 남을 인연을 찾으리




박민주

010-9637-3228

pak2571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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