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별 외 4편

by 해무 posted Oct 2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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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의 별


밤하늘, 새초롬한 별들이 고개를 내민다.

나는 그 중 가장 아름다운 별을 따려 손을 뻗었으나

잡히는 것은 그저 어둠 부스러기들 뿐이었다.


누군지 모를 그대 내 기억의 수레바퀴를 굴려

어딘지 모르게 펼쳐진 대지를 향해 가던 중 

나는 입을 열어

한번씩 두번씩 내가 내뱉은 말들이

붉게 또는 푸르게 꽃을 피워

타국의 밤, 그대 사지를 꽃물로 적시고 있는데

색채의 늪에 빠진 우리 웃음이건 눈물이건

기억은

금지된 인연처럼 들끓어오르고, 형벌처럼 사그라들어

이 밤하늘에 피는 꽃으로 태어났는지


오늘밤도 새초롬한 별들이 고개를 내민다.

기억들이 내 방안에 스며든다.

나는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보려 애썼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어둠, 어둠 뿐이었다.



산정상에서의 강


새벽이 아스라이 비춰오면

강, 그 물결이 나의 머리에 맴돈다.

저녁이 어렴풋이 다가올때

강, 그 물결은 나를 적신다.

비상하지 못한 영혼들의 곡소린지

이제는 때묻고 녹슬었을 어떤 기개인지


강은 나를 흔든다.

흔들고 또 흔들어 잠잠해진 나를 본다.

강둑 옆 수풀도 모를 상념에 빠져든 나는

이런 걸 순수함이라 일컬으며

강과 수평이 되게 눕는다.

자유를 나의 목적이라 한다면

강은 그것을 침몰시킬수도 살려줄수도 있는

자유의 선지자가 어찌 아닐런지...



바위산


바위산같은 우악스러움 안의 순수함이라

정갈하고 희귀한 식물들이 어찌 바위근처에만 자라는지

도로공사 인부들, 장정 20명도 들기 힘든 바위를 찾았으니

그 바위 어찌 그리 고집불통 독불장군인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애태운 그 바위산 정상에 서면

서울시를 내 발 아래 내려놓으니

험하디 험한 산길 이 천지인 안에 보상받네

아, 이 바위산은 영험하다.

겉은 우악스러우나 벌거벗은 자태는 순수, 그 자체다.



사마리아의 여인


사마리아에서 여인이 찾아왔다.

마른 모래바람 너머 기억들도 그녀와 함께 돌아왔다.

나에게 한 방울 물을 주고

한 줄기 생명의 빛을 보여주던

하얀 천의 나풀거림 아래로

익숙한 향기가 코 끝에 스며든다.

나란 황무지에, 끝까지 황무지였어야 할 나에게

그녀는 기쁘게도 외로움이란 왕관을 씌워주었다.

아득함을 초월한 눈물샘에서

늙은 석공의 팔 근육 속, 단련된 무상함에서

나는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는 공포를 보았고

왕관을 씌여준 그녀의 잔혹함을 생각했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수많은 사람들이 홍수에 내쳐지고

가뭄에 메마르고, 폭력에 시달릴때

기나긴 인연의 실 저편에

사마리아의 여인, 당신이 있었다.


내가 왕관을 씀으로 해서 당신과 종신계약을 맺었다면

당신은 내 외로움을 먹음으로써 영생하게 되겠지요.



시의 가치


매일 밤 이 거리에선

옛 신화들이 축소되어 내게 다가온다.

졸렬하고 비겁하게 채색된 그 모든 영웅적인 것들

시대는 그렇게 그들을 동전 그리고 지폐의 무덤에 가두었다.

그 곳에선 가끔 찢어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한다.

시간을 돌려보자

지금 이 음침한 술집의 전등 아래에서

시간을 돌려보자

진정 누군가 흥하고, 누군가 망했던가.

비극의 바리공주도 웃고, 아랑공주도 웃음지을

그런 밤은 어디에서나 존재할수 있다.


하늘에 내리는 비가 돈으로 바뀌는 이 시대에

나의 상상이 모든것이 아득한 세상에 미칠때마다

그러한 밤은 다시 태어남을 거듭한다.

산길에서 헤매고 있을 누군가

골목길을 걷고 있을 누군가

생의 외로움에 휩싸여 있을 누군가에게

내 시가 귓가에 닿는 그들을 위로해주길

동전과 지폐 걷어던진 날 것의 눈이

어느 누군가의 가슴을 휘져어 놓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