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었다 진 자리
욕심어린 손길과 가혹한 발길질로
헝클어진 흙의 머리칼을
바람이 툭툭 쓰다듬고
비가 내려와 도닥였다.
누군가 귀띔해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모를 테지.
잠자듯 덤덤한 그 자리에도
언젠가 노랗고 푸른 생명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다는 걸.
손아귀째 뽑히고
그마저도 모자라
속이 박박 긁히고 뒤집어졌지만
그 자리는 꽃이 피었다 진 자리이다.
만물의 이치가 비췄던 자리이다.
그러니 그대 함부로 밟지 말라.
함부로 욕되게 하지 말라.
그대를 처음으로 품었던 구유이며
그대의 마지막을 묵묵히 지켜볼
하나의 눈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