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 외 4편 김예찬

by joshyechan posted Nov 0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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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관


아파트 단지 속

거대한 벽에서

여덟째 벽돌 안

거실에 앉아


무언갈 열심히

바쁘게 쓰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내 시선은 유리너머

우아한 헤메임을 따르었고

짧은 만남이

길었던 멈춘 시간의 공백 속에서

이루어진것을 알아차린 것은


높은 빌딩 벽에 갇힌

하얀 나비의 몸부림이

콘크리트 창살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였다


그리곤 난 흥얼거리며 다시

죽은 나무의 살결에

죽은 나무의 파편을

긁기 시작하였다



느리게 떨어지는 낙엽


낙엽 떨어짐이 마치

하늘의 비행기 같이

더뎌 보이는데


난 왜 낙엽에 붙은

개미 한 마리에게는

그 속도가 얼마인지

헤아리지 못하는지


내 발 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돔이 아님에도


인간은 소리쳐

태양의 둘레에서

지구가 중심이라

확언했고


백인은 소리쳐

인류의 둘레에서

흑인은 벗어났다

믿었었다


개미 한 마리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면

어찌 한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으리


오늘부터라도 낙엽은

빠르게 떨어진다



성탄선물


가로등조차 날카롭던 바람에게 얼어간

어릴 적 그 해 어느 성탄,


어머니가 새로 사준 헐어진 낡은 외투는

차가웠던 바람의 입김을 막지 못했다.


하얬던 두 발자국마저 얼려버린 바람이었지만,


시려웠던 맨손으로 따뜻하게 맞잡은

온기 있던 모녀의 두 손만큼은


감히


얼릴 수 없었다.



나의 가을


얼굴을 흐드러지게

꽃피우다


얼굴을 푸르르게

일렁이고


얼굴을 빠알갛게

물들이다


얼굴을 새하얗게

덮어버린다


사랑은 만나

사랑을 나누고


사랑이 끝나

사랑은 잊는다


이번 가을은

잎개가 쉽게

물들여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사랑이

아직 끝나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참회시 (懺悔時)


내 죄는 그녀 머리위에

하얀 서리되어 내리고

독언은 날카로운 펜이 되어

그녀 얼굴에 빗금을 긋는다


백번 사랑하리라 다짐했다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녀는 백방울의 눈물의 훔쳤다


내 다짐은 흩어지는 구름,

단 한번도 날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는 그녀의 다짐은

내 구름 뒤에 숨은 수많은 별이겠다


떨어지는 백방울의 에메랄드를

구름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난 오늘도 허공에 손을 뻗어

어머니의 별들을 움켜쥔다




김예찬

joshyechan@gmail.com

010-7150-5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