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외 4편

by 최유리 posted Feb 2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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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초


숨소리만이 가득한 좁은 방 안에서

나는 새하얀 천장을 향해 누워있다


시간은 흐르고

다만 조금 더딜 뿐


모든 이들의 시간이 내게 주어진 듯

1분은 이다지도 느린 시간


지난 20여년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찰나같이 짧고

영원처럼 긴 1분 동안

내 지난 날들이 모두 지나갔다




담배 연기를 내뿜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

군데 군데 별들이 박혀있다


예전의 반짝이던 자태를 이제야 자랑하는 별들

지금은 그 영롱함을 잃어버린 별들

그저 한 때의 빛바랜 영광일 뿐


어쩐지 지나가버린 날들이 생각났다


온 힘을 다 해 행복했던 나날

이제는 낡은 추억의 한 페이지를 간신히 채울 뿐

흘러간 기억은 우주 먼지와 섞여버렸다


눈 앞에서 빛나지만 눈 앞에 있지 않은 별들과 같이



전하고 싶은 말


너를 잃었다


홧김에 튀어나온 헤어짐 한 마디에

너는 지친 듯 뒤돌아섰다


우리 관계에서 언제나

너는 을이고 나는 갑이었다

나는 자존심을 앞세워 너를 내리눌렀고

너는 일어설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더 깊숙이 박혔다

우리 연애의 시소는 언제나

내 쪽으로 기운 채였다


때문에 멀어지는 너의 뒷모습은 초라하다


처진 네 어깨가 다시 내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네 눈에 박힌 내 등의 모습이 너무 많기 때문임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 날 밤

나는 억지로 울었다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전하지 못해

나는 너를 미워하기 위해 억지로,

억지로 울었다



졸업사진


오랜만에 들어간 SNS에는 졸업사진이 가득하다

그들의 품에 한아름 피어있는 꽃다발이 화려하다


온갖 빛깔의 꽃잎들이 흔들거리며 내게 말한다

노트북 모니터 너머 넌 무얼 하고 있느냐고

좁아터진 하늘 아래서 너는 과연 무얼 했느냐고


하늘을 향해 학사모를 던지는 졸업생들의 표정엔

약간의 후회와 조금의 두려움

큰 설렘과 벅찬 행복이 섞여있다


그 얼굴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꺼져버린 화면 위로

썩은 눈을 하고 입을 벌린 채 턱을 괴고 있는 내가 보였다

까만 화면이 마치 학사모가 된 듯

나는 노트북을 던지고 싶었다


하루는 길지만 시간은 빠르다

언젠가의 시간 속에서 나는 그들과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죽어버린 삶의 모퉁이를 겨우 붙잡고 있지는 않을는지


한때 같은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던 이들이

이제는 사회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난 몇 년을 방황과 고독에 묻어버린 채 다시 학교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혼자 있는 방


닥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다

지금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이다


턱 끝까지 이불을 덮은 채로

위로받지 못하는 나를 달랬다


밖으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타고 한기가 올라왔다

그것은 피부 깊숙이 새긴 문신과 같이 온 몸을 검게 물들였다

하릴없이 눈물이 흐른다

까슬한 얼굴 위에 새겨진 눈물줄기는 이내 말라버린다


암흑처럼 새까매도 괜찮으니

곁에 누군가가 있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름 : 최 유리

이메일 : symve@naver.com

휴대폰 : 010 2721 4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