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
박주은
너와 처음으로 간 그 겨울 바다에서
모래사장에 새겨놓은 너 와 나의 이름은
바람처럼 밀려온 바닷물에 쓸려가 버렸는데
너와 처음으로 간 그 겨울 바다에서
너에게 처음으로 들었던 그 사랑하는 말은
봄 바다가 되고
여름 바다가 되고
가을 바다가 되고
다시 겨울 바다가 되어도
단 한 점도 쓸려가지 않는다
나는
박주은
나는 투명합니다
나는 없습니다
사람들 기억속에도
사람들 주위에도
나는 너무 투명해 그 존재가 사라져 버립니다
투명인간 이라는 말은
나를 위한 말 같습니다
이름조차 짓지 못할 정도로 투명한 나를
나는 투명인간 이라고 부릅니다
해
박주은
늦은 저녁 집을 나선 해 는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잘 준비를 하는
내 가 기다리는 줄 도 모르나 봅니다
눈꺼풀 위에 올라 탄 졸음은
자꾸만 눈을 감았다 뜨게 합니다
하지만 기어코 해 의 품속에서
잠들고 싶은 나는
졸음을 쫓아보려
눈을 때려보기도 하고
눈 밑을 꼬집어 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 해가 뜨고
검던 하늘이 푸르스름 해 질때 즈음
해는 스멀 스멀 다가와 나를 안아 주었습니다
텅 빈 우리 집
박주은
노오란 작은 가방 속에는
보오란 칭찬 스티커가 있다
엄마에게 칭찬받으려 설레는 마음
신이나 집으로 뛰어 들어가자
터엉 빈 우리 집
제법 커진 가방 속에는
하이얀 표창장이 있다
엄마에게 자랑하려 들뜬 마음
애써 누르며 집으로 들어가자
터엉 빈 우리 집
커다란 가방 속에는
꾸깃꾸깃 접힌 성적표가 있다
엄마에게 꾸중 들을까 우울한 마음
집 앞에 한참을 서 있다 집으로 들어가자
터엉 빈 우리 집
내 마음도 터엉 터엉
터엉 빈 우리 집
마중
박주은
일기예보가 맞지않던 날
비가 오는 날
친구들 저마다
제 부모 에게로 뛰어간다
교문 앞
아무도 오지 않는 날
색색의 우산이 점점 멀어져 간다
뚝뚝 비를 맞으며 멍하니 서 있다
나를 마중 하는 것은
형태를 갖추지 못한 공기 뿐이다
버려지지 않는 것
박주은
누구나
버리려 해도
절대적으로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내게
그것은
가족 이다
결코
평범하지 않으며
결코
행복하지 않은
그것을 버리려 하면
내 머리는 그렇다 한들
내 마음은 아니다 한다
쓰레기통에
몇번이고
버려도
언젠가
보면
몇번이고
돌아와 있는
버려지지 않는 것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