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차 창작콘테스트 시 공모 - '그런 것들보단 역시 네가' 외 5편

by 학생 posted Feb 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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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들보단 역시 네가_학생

 

널 바라보다

봄이 끓어넘쳐

벌써 여름이고

 

널 생각하다

가을이 식어버려

이내 겨울이네

 

날씨따라

계절따라

 

끓어넘치기도,

때론 식어버리기도

맘고생 심했지만

 

멀고 멀었던 발자국 끝에

선물 하나 웃고 있다면

 

은하수 한바퀴 둘러가는 여정이라도

웃으며 배낭 챙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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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꽃_학생

 

오래된 꽃길 위에 그대 홀로 덩그러니 두진 않을 거에요.

그대도 헌 꽃들 사이에 나 혼자 외로히 남기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외로히 억겁의 시간이 지나면 심장을 식혀버리던 찬 눈물 한 줌이

가장 뜨거웠던 꽃의 기억이 되어 버릴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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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할 꿀단지, 나가야 할 좁은 방_학생

 

꿀이라는 속삭임에 녹아

그 꿀단지 든 방안에 들어가

나를 가두고는

 

단지에 구더기 몇 마리 생겨도 몰랐고

꿀이 상해가도 모르다가

 

결국 알아차렸을 땐

잠구었던 자물쇠에 녹이 슬어

열쇠도 안맞아.

 

보름 정도 방 안에 틀어박혀 며칠을 단지만 바라보다

가득히 풍겨져버린 꿀 내에 헛구역질 몇 번 할지도 몰라.

 

그러다 지쳐 얼굴만한 창틀에 기대어

바깥 세상 바라보며 방에서 나왔다는 착각을 해도

 

어느 날, 어느 순간 가끔 방 안을 다시 둘러보게 된다면

그 달던 꿀이 생각나 결국엔 눈물 맺혀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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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낮에서 밤까지_학생

 

사랑합니다.

말로써는 다 못하니

그대를 만나

진실된 거울로써 아름다운 그대 모습 비춰드려 미소 띄우겠습니다.

 

글로써는 다 못하니

그대를 보며

생그러운 노래로써 그대 미소 들려드려 웃음꽃 한 송이 선물 드리겠습니다.

 

아름다운 날일테니

멋있는 걸음으로 그대 앞에 서겠습니다.

 

화창한 날일테니

사랑스러운 향기로 그대 모습 드리워주세요.

 

그 밤부터 그대 집 앞 오솔길엔

나와 달맞이꽃 한 송이 피어 그대 걸음 맞을테니

그 한 송이와 나를 분위기 있게 찍어 행복한 우편과 내게 실어보내주세요.

 

그 밤에는 마주잡은 두 손 위에

휘영청 밝은 보름달 드리워있을테니

 

고즈넉한 목소리로 달빛이 아름다워

달빛에 반한 서로의 눈동자가 눈부시게 어여쁜 달이 되었다고 사근히 말해주세요.

 

그렇다면 나는 당장 사랑에 녹아 미스티블루 한 단이 되어

그댈 향한 나의 마음 훤히 보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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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가을 아침_학생

 

늦가을 어느 날, 눈을 뜨자마자 몸이 베베 꼬여 침대에서 한 걸음도 바깥으로 나가기 싫어

어젯밤에 읽다 머리맡에 펼쳐두곤 눈꺼풀 감아버렸던 만화책을 들고 뒤척거리다

2권을 찾아 책상을 향해 고개를 돌린 내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사라진 과자 부스러기들과 필통에 들어간 어수선했던 필기구들,

바닥을 뒹굴던 만화책들이 가지런히 꽂힌 책장.

 

시계를 살펴보니 벌써 정오가 다 되었기에

요깃거리 찾아 부엌을 어슬렁거리다 부스스한 눈으로 바라 본 냉장고 옆, 식탁 위에

어제 쳐둔 갈색 커튼의 누리끼리한 빛을 받아 더 노란 유자 한 통과

유자 뒤 어두운 그림자에 더 검은 보온병과 한 데 담긴 과자들, 그리고 냉장고 속 반찬통들.

 

콩자반 옆 남은 과자 세 조각 집어들고 거실로 향한 내 눈길엔

가지런히 개어진 빨래와

예쁘게 정돈된 선반 위 아기 천사들, 그리고 내 어릴적 사진들.

깨끗이 비워진 쓰레기통과

위치가 달라진 진공청소기, 그리고 청소기 옆엔 처박혀있던 대걸레.

 

화장실엔 낯선 샴푸와 칫솔 세트, 그리고 하얘진 욕조.

현관엔 주욱 정렬된 나의 몇 안되는 신발들, 그리고 옆에 걸린 새 구두주걱.

베란다엔 싱그러운 선인장, 널려진 아직 축축한 빨래들, 어머니의 흔적 남은 세탁 비누.

 

집 안을 살펴보다 퉁명스레 나온 말은 겨우, 에이 아침부터 찾아오지 말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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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 첫 시_학생

 

초등학교 1학년

나는 내 생에 처음으로 시를 써.

 

이제 와서 그 즈음 비슷한 시기에 썼던

운동회와 바다 중 어느 것이 내 첫 시인지는 잘 모르지만

한 편 쓰고 나니 즐거워 다시 또 펜을 잡고선

내리 세 편은 쓴 듯한 기억이야.

 

담임 선생님께선 다 쓴 시 고이 받아

반 뒷편 초록이 연두같은 게시판에 걸어주셨더랬지.

 

아무 이유 없어도 내 시가 게시판 한가운데에 걸려서

하루종일 왠지 기분도 좋고 시도 좋았지.

그 날 하루 내내 내 시들만 뚫어져라 감상한 것 같아.

 

그게 아직도 기억 저편 사랑방에서 손님을 받는 걸 보면

난 그 때부터 시를 짝사랑해왔는지도 몰라.

 

실력이 안되어도, 너무 재밌어서

가끔은 추상적었고, 때로는 자연적이었고, 언제는 로맨틱했던

내 짝사랑은 벌써 9살이지.

 

앳되고 어린 복숭아처럼 부드럽고 하얗던 내 짝사랑은

벌써 내 첫 시를 쓴 나의 나이보다 많아져버렸고,

이제 조금은 아름다운 사랑을 쓸 수 있게 되었는지도 잘은 모르지만

 

꽃을 그리고, 아이를 그리고, 바다를 그리고, 친구를 그리다보면

 

언젠가 다시 한 번

손톱에 예쁜 봉숭아 물들인

8살 꼬마 소년의 붉고 두꺼운 입술 위로

너무 푸른 바다 위에서

좋아하는 친구들과 뛰어노니 행복하다는 짝사랑이 태어날거라 믿어.



성명 : 심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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