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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사춘기의 개미가 남몰래 빈방을 파낸다

 

폐등에 쌓이면 흐려지는 전등이기에

꿈이 의무인 개미집에서

심지를 굳게 세워 양초를 녹인다

그림자는 아무리 벽을 올라도

밤으로 채워진 전등에 갇히게 되고

 

낯선 벌레가

생애 첫 채색을 밝히며 문고리를 만진다

사방에는 금이 간 창문으로

그런 명도로 채색되어

오로지 제 몸속의 기생충이 꿈적대는 소리만 들릴 뿐

 

더듬이로부터 분사된 호르몬이

사슬을 푼다

곧게 퍼진 개미집의 알고리즘

양초가 흘러들어 모든 방을 채운다

그 흐린 방들이 녹아 페로몬향이 시끄러워질 때쯤

문고리가 돌아갔다

자신마저 몰래 파낸 방이 드디어 열리고

지붕의 구멍이 바로 제 앞에 나타난 것

 

삼분위의 머리 가슴 배에서

공식 없이 써내려간 망상으로

초원의 먹이사슬이 풀리고

가는 골목마다 한 줄의 향이 맥을 이뤄 흐른다

 

커져버린 독백으로 입술이 적셔진 사춘기

그 난제의 풀이를 말한다

 

 

 

 

 

안대

 

꿈을 조작할 수 있다는 안대를 샀다 눈동자로 막혀있던 자리에 달이 떴다 구멍 난 망막에 그림자가 껴

눈 밑이 부었다 그 탓에 안대는 밤마다 검정으로 흘러내리고

 

실수로 안대를 끼고 세수를 했다 달에 생긴 호수는 소행성이 지나갈 때마다 조금씩 출렁였고

잘린 토끼의 귀 두 개가 순항중이다 태양이 수직으로 멈춰 그림자가 하수구에 쌓여있다

안대를 낀 곳에 자국이 남았다 그곳에 물이 고이고 색은 아마도 검붉은 그림자

 

안대에도 눈자국이 났다 지구가 될 번한 암석이 크레이터에 묘지를 세우고 달의 암꽃술이

물방울에 감싸여있다 빛이 닿지 않는 뒷면을 보고 싶은, 자전하는 속도로 꿈속을 달리며

 

달력이 펄럭이니 안대를 끼고 눈을 감아 두개의 밤이 차오르고 달이라는 눈을 깜빡인다

 

백야가 끝난 새벽, 눈동자에 운석이 떨어진다

 

 

 

도시

 

자유의 여신상을 건축할 때 뿌리는 어디로 갔는지

빗물에 넘쳐난 지렁이들이 승강장으로 향하고

건축가는 제일 먼저 건물을 심을 땅을 파낸다

 

중성中性의 도시에는

휘어진 차선이 흐르고 주변에 이끼 꽃이 피었다

사람들이 회색 지렁이를 타고

빠른 속도로 숨구멍을 틔는

혹 지렁이에 잡혀 먹히는 개미들의 자태

 

분홍의 도시를 지을 거야

인부들이 형광의 작업복을 맞춰 입고

매니큐어로 손발톱을 치장해야 들어갈 수 있는

예쁜 공사장으로

심취한 건축자재들로 꾸미는 도시

 

남성들이 지렁이를 갈아 만든 립스틱으로

입술을

그 갈라진 틈을 도색한다

 

도시의 날씨는 맑음

회색을 맑다 표현하는 사람들의 기상예보가

오늘도 인부들을 작업장으로 밀어낸다

분홍의 지휘봉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콧등

 

코끼리가 낙엽을 말아 담배를 피운다

동굴에 빛을 심으면 터널이 되듯

범람하는 연기로 코의 입구부터 꼬리의 혈관까지

긴 도로가 개통되었다

 

공기가 가볍다

숨을 마시면 가슴이 빠르게 부푸나

압력이 높아진 귀에서 담배연기가 빠져나가는

폐의 일몰

미래에는 오존층이 깊은 담배연기로 바뀌고

피부가 두꺼운 코끼리만 살아남는다

 

호수를 빨아들여 초원이 마른다

코끼리들 흐려진 물로 몸을 적시고

이제 깨끗하다며 귀를 펄럭인다

 

초원에 비가 내리면 파리를 쫓을 꼬리가 가벼워지지

담배연기는 빗물에 부딪혀

아래로 추락하고 호수 위를 부유한다

 

입을 벌리고 빗물을 모아 마실 수도 있건만

아기코끼리 긴 코를 사용할 줄 몰라

입을 대고 호수를 삼킨다

콧등의 주름이 뿌옇게 적어갈 만큼

 

 

 

 

 

마른장마

 

목이 마른 욕조에 물을 채워주고 젖은 이불이

하늘로부터 몸을 가려주는 밤이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집이 품고 있던 빈집의 냄새가 나를 덮쳐와

그렇게 현관에서 한 시간 가량 샤워를 했다

외지의 모래가 발톱에 잔뜩 끼어있건만

어느 때보다 깨끗한 시간이었고

이내 열어본 배낭에 다시 새 속옷을 담아

여행을 떠나려한다

 

마지막 잠자리에서

욕조 위 출렁이는 파도와

몸에 남은 건조한 감정들이 이불에 묻혀 진다

밤에 묻는 때를 지울 때 많은 사람들이

눈물표백제를 사용한다

반나절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해진 하늘을 지고 가는 사람들

하루 그 안에 한사람에게 치인 향기로

눈을 뜰 수 없게 되면 또다시 밤이 찾아오고

버틸 수 없음에 배낭을 챙긴다

 

욕조에 모든 물이 빠졌다

축축하던 이불이 모두 말랐고

그 탓에 수분 가득한 몸으로 현관을 나선다

여전히 발톱에 모래알들 흩어지지 않은 채

발자국이 물의 장력으로 부풀어

걸어온 날들에 달력이 축축하다 못해

불어서 허공을 삼킨다

 

 

 

 이름: 양기훈 /남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봉영로 1517번길 76, 632동 203호

n0178@naver.com  / 010-9502-9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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