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경계에서 외 4편

by 대뷰자 posted Oct 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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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경계에서


가끔 경계 밖에서 뛰놀고 싶을 때가 있다.

삶도 죽음도 아닌 인생이라는 외줄

아지랑이 같은 외길로 걸어가는 매일

의미 없이 흘러서 갈 죽음이라는 심연


그 위에서 살짝 깃털처럼 내려와

발끝으로 창공을 누비며 날아다니는

민들레 홀씨로 만든 양산을 들고

이름 모를 이국의 춤을 추고 싶을 때가 있다


해가 질 때까지 구름 아래서 뛰논 다음

달의 그림자를 등에 진채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때가 있다.


눈앞에 장막처럼 펼쳐진 빗방울의 베일

거울 같은 수면을 깨고 날아오르는 물고기처럼

그 커튼을 살짝 들추고 뛰어들어

춤추는 빗방울의 손을 잡고

눈 밭 위 강아지처럼 팔짝팔짝 뛰고 싶은

때론 그런 날이 있다.



이별


가로등 밝힌 가을밤은

술잔처럼 깨끗하고

사랑은 담긴 소주처럼 투명한데


들이키는 이별은

쓰네


사내가 술잔을 기울이네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네



호수


호수에 비 내리듯

마음에 비가 내리고


심장 고동처럼 번진

빗소리에

출렁이는 호수 같은 밤


비 내린 잔잔한 호수에

별 비치듯


잎사귀

하나의 흔들림도

없는 밤이 되어라



십 년


십 년 키운 강아지

두 달에 한 번 집에 가도


살랑살랑

꼬리 흔들며 반겨준다


사람 얼굴 안 잊어버리는 게 참 신기해

혼잣말로 묻자


그럼 몇 년을 같이 살았는데

잊어버리는 게 더 어렵겠지

어머니 말씀


아무 말 없이 나는

무릎에 누운 녀석

등을 쓸어주었다.



미련


너를 쓰던 편지에

내 마음의 연필이 부러지고

지우개똥 같은 지저분한 미련만 남아

나는 차마

쓸어내지도 못한 채 너를 훑는다


종이 위엔

흑연처럼 번진 너의 흔적들

나는 미련의 더러운 지우개로

지워보지만

너의 흔적이 묻은 지우개로는

애달픈 추억만 더

번져갈 뿐


사랑이라는 건

너덜너덜한 편지지 위에

다시 

너라는 기억을 덧쓰는 것



김영준/19890919/zpakaz@naver.com/010-3016-7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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