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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0 23:59

김경빈 - 환생 외 4편

조회 수 309 추천 수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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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바들바들 떨며 처마 밑 한 켠으로

물방울들이 미끄러져 모여들었을 것이다

조금 더 낮은 곳에서

옹기종기 한 몸으로 웅크렸을 것이다


맨 처음 공중에 빙장된 물의 묘 터 위로

잇따라 몸 던지는 비장한 물방울들

아래로 아래로 그 행렬 이어지고

물방울들의 얼은 몸

겨우내 투명한 죽음으로 뾰족하던

고드름이 녹기 시작하는 건

다시 새로운 생의 여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도처에서 봅이 밀려오고 있다는

뜨거운 몸짓이다


나 살아내었다고, 여기 있다고

그러니 너 이제 깨어나라고

얼은 땅에다가 한 방울씩 한 방울씩

옹골차게 떨어져 노크하는

저 눈부신 환생의 순간




무전유죄


11월의 경주역

무전여행 중이던 나는

행색이 멀쑥한 나일롱 거지였다

자초지종을 들은 역무원이

대합실 한 켠을 빌려주었다


씨벌,


국방색 바지에 군홧빛 맨발

오늘도 가난과 전투 중인

한 노숙자가 내게 달려들었다

이 씨벌놈이 가난도 탐이 나더냐

그래, 등 따신 집 기어나와서는

내 가난도 훔쳐갈거냐

그에게는 뚜껑 잃은 소주 한 병이 있었고

그 때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으므로

나는 유죄였는지도 모른다

역 사무실에서 역무원이 나왔고

그 노숙자는 패잔병이 되어

새벽공기의 폐허로 끌려 나갔다


경주역 대합실 벤치에 앉아

형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나는 아침을 기다렸다.\




아궁이


붉게 언 노을을 걸어 귀가한

한 움큼의 식구가 소반에 둘러앉는다


낮은 키의 밥상 아래

바짝 마른 장작들이 한 쌍씩 가지런하다

그래, 저 밥상 아래가 바로

아궁이 속이다

살아있는 것들만이 허연 입김 내뿜듯

하이얀 쌀밥도 모락모락

김 피어 올리며 추위에 떤다

구정양장의 하루를 거쳐 온

뻣뻣한 다리들

저마다 잉걸불인 듯해도

뒤척일 때마다, 맞닿을 때마다

타닥, 딱, 타닥

서로의 숨통 틔워주며 간신히

간신히 불씨 살려내는 소리 들린다


겨울 저녁

안방이 한 덩이로 붉다




거미 노인 박氏


검버섯 같은 먹구름이

꾸역꾸역 밀려드는 새벽

현관 한 구석

허공의 상형문자를 띄워주고서

거미는 잠자코 있다. 종일 기다려보아도

파리 한 마리 걸려들지를 않고

살기 위해 거미는 자신이 엮은

하느작거리는 획들을 도로 갉아먹는다

앙상한 다리에 비해 불룩한 더 몸뚱이는

끈적한 허기로 가득 찬 것이 분명하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작업을 공쳤다

우산도 없이

비에 젖을 일당도 없이 노인 박氏는

새벽에 나왔던 길을 도로 갉아먹으며

귀가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거미줄에 걸린 무수한 눈망울들

그렁그렁하며 박氏를 맞이한다


거미는 사실

어쩔 수 없이 거미줄을 친다.





문턱


요즘은 없는 집도 많긴 하더만은

우리 가족 살고 있는

이십 몇 평 헐거운 아파트에는 방방마다

공간의 아슬한 경계마다 문턱이

문턱이 앉아 있다. 몇 번 페인트를 덧칠한

지금은 하얀색인 문턱은 그러나

가장 먼저 화장을 지운다.

문턱은 방문보다도 더 강직하게

순정을 지키며 있는데도 가족 중 누구하나

방문을 열며 문턱을 보듬을 줄 몰랐다.

지조없이 팔랑이며 열렸다 닫히는

방문의 발목을 끌어안고 있는 걸 모르고

만취한 아버지 나 태어나기도 전부터

곰삭은 설움으로 애먼 방문을 밀어붙일 때

쾅쾅 울리는 소리가 문턱의 신음인 걸 모르고.

악몽을 꾸었거나 달빛이 시려 잠에서 깬 새벽

암순응이 불가한 야맹의 목마름으로

부엌 주전자에 식혀둔 보리차를 마시러

방을 나서다 발에 차인 문턱이

하얗게 울고 있다.

가족들이 잠에서 깰까봐 소리를 억억 삼키며

엄지 발가락을 부여잡고 뒹구는

단단하고 치명적인 외로움의 시간.

내가 모른체하고 지나온 소중한 것들이

문턱에 누워있다. 가끔 이렇게 외상 없는

지독한 저릿함으로 앓아보라고

앓으며 잊지 말라고

  • profile
    korean 2014.12.11 00:03
    마감시각에 아슬아슬하게 응모하셨네요.
    좋은 결과가 있길 기대하겠습니다.
  • ?
    김경빈 2014.12.11 00:05
    이 시 응모한 김경빈 입니다. 게시글 수정하려니 혹시 응모 시간이 넘어가서 등록되지 않을까 싶어 댓글로 개인정보 남깁니다.
    김경빈, kkbbtr@nate.com , 010-9922-0848
    응모작 <환생> <무전유죄> <아궁이> <거미노인 박氏> <문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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