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 외 4편

by 엘오부히이 posted Feb 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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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


당신의 손결에 스치는 나의 상처
당신의 눈동자에 요동치는 나의 흉터들
나의 간절함을 불러일으켜세워
내가 나를 찢고 벗기고 고통스러워하니

그제야 그대의 손 나에게 닿아
그 안에 내가 들어갈 수 있군요

그렇다면 나는 더 세게, 더 잔인하게
교묘하고 섬세하게 나를 할퀴고 찢어 이내
나의 상처를 벗겨 보여주고 싶습니다
하염없이 누르고 찔러 곪아 터진 상처는
당신의 손을 원합니다.

이제 당신도 나를 원하나요
당신의 손이 닿은 상처에는 

딱지가 가라앉아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만들었습니다.

내 몸에 남은 흉터가 
바로 당신의 두 눈동자에 비치는 나의 상처들이
그렇게 바라왔던 그대의 관심이라는 것을
곧 그대를 향한 나의 갈증인 것을



빈 수레


덜컹거리는 수레바퀴에
내 마음
들통 날까 겁이 나

더욱더 요란스럽게
바퀴를 다투어 굴려본다.

행여나 가볍고 공허한
내 마음
들통 날까 겁이 나서

언제부터였을까
바퀴 소리에 내 마음 숨겨놓은 때가

숨이 멎을 정도로
바퀴가 굴러가도
내 진실된 마음 하나 담지 못하는
빈 수레를

나는 굴리고 또 굴린다.
마치 짐을 잔뜩 싣고 달리는 것처럼



안개꽃


꽃내음 속에 흰봉우리 피어나

바람에 살짝만 흩날려도

내 마음에 닿을 수 있다네


시큰시큰한 향기 봄 냄새같아

내 콧등에 대고 살며시 얘기하네

나는 가늘고 여린 꽃이라고


나의 마음 너의 마음에 피어나

바람에 살짝만 흩날려도

내 마음에 닿을 수 있다네



노인


세월 앞에서 무력해지는

당신의 안색


검은 두 눈동자 사이에

무심코 보인 지나간 고통의 실선들


검버섯 눌러앉은 살결은

움푹 들어간 입술의 결만큼이나

거칠고 창백했다.


육신은 불타오르겠지만

여전히 푸른

당신의 눈동자 속에서 드리운다

그대의 가장 푸르렀던 시절들이


그대의 세월은

지금 당신의 눈앞에서 달려가고


나의 세월은

내 등 뒤에서

나를 좇아오고 있는 것일까 





그대의 인생



겨울 끝자락에 머물고 있는 그대

정서 없이 떠도는 나그네처럼
공활한 가을 하늘을 그리워한다네

당신의 가을 하늘은 그리도
넓고 자유로웠던가

가을 하늘을 그리워하는 당신
여름 바람 스쳐가는 줄 모르고
그 향수에 취해 여름을 잊지 말게나

당신의 여름은
그토록 뜨거웠지만 바람만큼
짧게 느껴졌을 터이니

여름 바람에 치맛자락이
휘날렸던 당신
그 열정과 열기에 취해
그대의 봄 소리를 잊지 말게나

봄 소리가 당신의 귀에 울려 퍼지고
비로소 당신은 겨울이 왔다는 것을
깨달았을 터이니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 말고
또한 잊지 말게나

당신의 겨울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의 겨울 그 끝엔 또 다른
봄이 온다는 것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부희

010 2298 3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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