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차 창작콘테스트 시부문 응모

by 오로라 posted Aug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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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어스름한 구름떼가 산자락을 휘감더니

산등지에 장대비를 칼처럼 꽂았다.


놀라서 울먹이던 숲나무 잎새들이

안개를 토해내어 큰산을 숨겼다.


늘 제자리던 거대함이 한시에 사라지니

스치는 눈으로 보일 길 없고

흐릿한 눈으로도 찾을 길 없다.


가벼이 얕은 시선으로 무엇을 보겠는가.

빛만 좇다 어둠이 농익으면 멈추지 않겠는가.


기다려라.

큰산을 뒤덮은 산안개는 걷히고

믿음을 뒤덮은 불안은 걷힌다.




이게 뭐라고



자전거 페달을 구르며

손잡이를 움켜쥐곤

잔뜩 힘을 세웠다.


행여나 내팽겨질

두려운 몸뚱이를

길들이려 애쓰다가


잠시 고개를 드니

펼쳐진 은빛 바다로

눈짓이 환히 밝았다.


안장 위를 달군

무거운 공기가

달달하게 뺨을 스치니


이게 뭐라고 미소가 번지고

이게 뭐라고 웃음이 들어

이토록 좋을 수 있는가.


오래도록 머물다가

흔적이 되어주련.


이런 저런 날에

유유히 꺼내보아


울다가 웃음 지어

마음이 다지도록.





이름없는 들꽃의 아름다움


가던 길을 멈추고

이름 모를 들꽃 앞에 넋을 잃고 말았다.


나를 붙잡은 꽃잎이 그 향기가

참 예쁘고도 고와서 꽃에게 이름을 물었다.


길 모퉁이서 피어난 길꽃이라 하니

다시 꽃에게 씨앗의 이름을 물었다.


꽃은 내게 답했다.


'찔레꽃이라 하면 기억하고 싶을테고,

들꽃이라 하면 뒤돌아 잊을텐가?'


버려진 씨앗도 귀하게 기억되어도 된다.

그저 이름 없는 들꽃도 충분히 아름다워도 된다.



비겁했고 비겁하고



시련이라고 어둠이라고

내게서 도망친들

그런 시련도 저런 어둠도

결국은 너의 몫.


네 온기가 절실하였던

차디 찬 내 손이 시려 뿌리치고서


잘 살라는 말로 나를 잠재우고

못 잊겠다고 왜 깨우는가.


헤진 시간들로

너는 초라해지고 나는 단단해져서


내가 아니어도 너는 흔들리고

네가 아니어도 나는 이뤄냈다.


이제와 구멍 난 주머니에 나를 구겨 넣을텐가.


어떤 것도 나를 흔들지 못한다고

연민으로도 비겁함을 품지 않겠다고


금이 간 여린 마음을 이 밤 내내 부여잡을테다.



바라보아야 상처다


오래도록 눈에 밟힌

멋진 가구를 내안에 들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닦고 매만지며 마음을 주었다.


우연히

가구가 품은 흠집과 대면한 날


그 깊이만큼 헛헛한 마음에

태풍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슬프고도 아쉽고

분하고도 아팠다.


문득 창너머 말랑한 바람과

지저귀는 멜로디가 흘러들었다.


그러다 신선한 아침으로

배를 풍성히 채우고 나니

어떤 것도 아무렇지 않았다.


바라보아야 상처다.

그러므로 과감히 버림받겠다.


상처, 너로부터

충분히 외면받고

차갑게 무시당해


아무렇지 않게

그대를 내품에 들여와

다시 빛나게 아껴주겠다.





이가경.

bonicastle@naver.com

010-9238-2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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