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
서 현석
누구를 만나기 위해 오래도록 기다렸지만
끝내 보지 못 하고 눈 감는 인생이지.
고산병의 두통 없이는 못 가는 곳.
고갯길의 땅에 갇혀서 오래된 미래가 되었지요.
알몸의 껍질조차 벗겨지고 속살까지 이리저리 패여
끔찍한 서러움으로 길게 이어진 곳.
어루만지고 입김 불어서 초록이 미세하게 번집니다.
불탑에 숨어 저녁노을에 눈물 흘리며 위안받는 곳.
* 인도의 라다크는 해발 3,500미터의 고지대에 위치함.
미미한 유산
서 현석
벌개미취 작고 검붉은 열매가 아직 달려있는데
새잎이 나려 합니다.
그 열매는 배고픈 새들의 양식.
빚만 남기고 떠나는 가장이 쓸쓸합니다.
허나 진정한 유산은 교훈 한 마디.
함께 놀러가서 찍은 사진 몇 장.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두드려 주던 기억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더라도
사는 동안 가난한 의식주를 마련하고 따듯하게 자식을 키운
흔하디흔한 가장들이
햇빛이 눈물에 산란되도록 귀중합니다.
강아지풀
서 현석
개꼬리 삼년을 땅에 묻어 봐야 개꼬리라 하지만
넌 새로운 아름다움이다.
환생으로
꽃인 듯 꼬리인 듯
바람과 비구름과 별과 달, 해마저 환영하고 응원하다
지천으로 가까운 공덕이 되었구나.
우발(偶發)
서 현석
독산동 빕스에서 조리하던 젊은이가
저를 보고 스파게티 담긴 프라이팬을 쏟고
관악역 플랫폼에서 눈이 마주친 아줌마가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체육공원에서 아장거리던 아이가 날 보고 넘어지고
뜨거운 일회용 컵 속 커피가 위험하다.
과속의 바퀴를 바라보는 눈동자도 불안하다.
내리막길 삐딱 거리는 하이힐과
언 손으로 빼든 날카로운 복사지 날이 위험하다.
철모르고 핀 작은 장미도
철없는 어른도 불안하다.
평화는 불안 속의 한 순간.
행복은 연이은 불행의 쉼표.
추억은 망각의 바다 위에 부표.
영월 동강에서
서 현석
하늘은 높고 푸른데
강물에 산을 말았나 산에 물을 담은 것이냐
산줄기 돌아 물줄기 오니
물줄기가 돌까나 산줄기가 돌까나
경계도 희미하네.
시야도 몽롱하네.
주변을 가지가지 꽃과 푸른 잎과 곱게 물든 단풍
그리고 하얀 눈으로 사시사철 바꾸니
변함없는 남자도 좋고 나날이 아름답게 변하는 여자도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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