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창작콘테스트 시부문 응모 <진눈깨비 외 2편>

by 귤까먹는사람 posted Jan 3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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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축축한 오뎅국물에 취해서

너를 안았다.

안아서 안아서 하얘진 몸

그 속은 비어서

땅에 도착하면 까발려져

투명해졌다.


너무 솔직하면 녹아버리니까

너를 두겹 세겹으로 안았다

보이고 싶지 않은 만큼 더 꼬옥

쌓이고 쌓여서

뭣이 진실인지 모를정도로


나는 너에게

흘러 내려 잊혀질

액체이고싶지 않아서 차라리

밟혀도

자국 남는 아픔이 되고 싶어서


안아서 안아서 하얘진 몸

그래도 속은 비어서

먹다 남은 국물에 녹아버리는

그게 나라서

너를 놓쳤다.





<말하기 싫은 날>


그런날이 있어요

말을 하면 안될 것 같은
말을 하면 뱃속에서 무언가가
꿈틀 하고 웩 나올 것 같은.
보통 날이면 골목 마다 밟아가며
숨박꼭질에 무궁화꽃에 바빴을텐데
오늘은 온 세상이 갈색과 노란색으로만
보여 특별한 빛이 없어요

속이 뱅뱅 돌아서
토하고 싶은 내 맘을 어떻게 알았는지
가게 앞 펼쳐진 종이상자 위에
토 하지 마세요 하고 빨간 색연필로
몇겹이나 써져 있어요. 이렇게 분명하게 요구하면

난 도리어 참을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 막혀진 토는 벌써 목구멍까지 올라왔어요

집으로 급히 발을 돌려요
목구멍에서 잇몸까지 아직 여유가 있어요
그 여유를 앗아간 건 아마 당신 그리고 당신
난 생각을 하기 싫어져요. 곰씹는다는 것은
그만큼 토할 게 늘어난다는 뜻이에요.

나에게 뭘 원해서 멀리있는 우리집까지
찾아와, 사실 그리 멀지 않다 해도,
노크를 하고 갔나요 나를 다시 보고싶었나요?
그런데 왜 똑똑 소리만 내고 다시 빗장뒤로 숨어버렸나요,

내가 꺼내주길 바라나요
나는 나오기야 했어요 찬바람을 뚫어

도착지는 나뭇잎 떨어지는 곳이에요

하지만 이제 토가 목구멍을 넘어 입천장에 닿을락말락해요

그건 아마 당신 생각 때문이에요
난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고 문고리를 붙잡고 바짓가랑이까지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에요

하지만 내 손은 두개라

당신 바짓가랑이는 잡지 못해요

아쉬운가요? 나는 야속하다고 생각해요

길거리의 그 빨간 글씨가 야속해 죽겠어요.





<연애가 하고 싶다>


모텔 밖 바람은

스산한 아침

네가 태우는 담배는

콘크리트와

맞추는 5cm 남짓의

입술

 

열기는 네 발치에서

내 신장에서

네 귓가에서

내 손금으로

가슴 속이 아닌

땅으로 고꾸라진다

 

그대들의 웃음 소리는

내 장송곡

손을 맞춰 짝짝짝

순댓국 냄새가

바람에 실리면

욱씬거리는 갈비뼈

 

벗겨진 잣나무 사이

초록색 셀로판지로 덧댄

어설픈 마음

또 한 대 연기로

가려 본다

아-연애가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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