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칙이 역설되랴
당신은 불같은 사람이여서 나를 그리도 애태웠다.
화만 돋우는 조연성 감정 화합체인 내가 무슨 의미이랴.
당신에게 끝없는 상처를 받아온 가슴 속 울분의 부피는 증폭되었고,
증발이 지독히 일어난 불모의 메마른 감정에서 우러난 나의 아픔이기에,
당신이 나를 바라보며 눈을 맞춘다 한다면,
당신이 법칙이 역설되랴 울부짖을 지라도,
내가 당신의 손목을 움켜쥐는 그 순간, 고통의 질량 보존 법칙은 역설될 테리다.
분배되지도, 치환되지도 아니한다.
그대가 내 눈동자를 바라보는 그 찰나, 불모의 황무지는 내 슬픔의 동공에 휩쓸리며,
임이 내 마음의 서러움을 전자만큼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이 법칙이 역설되랴 울부짖을 지라도,
그 순간, 당신의 분노가 타고 있던 가속도의 법칙마저 역설될 테리다.
무중력의 진폭
확고히 봉인해 두었던 이상(理想)관념이 갈라져 가지 않느냐.
녹색의 풀무지가 너의 뺨을 쓰다듬고,
고요한 별빛 아래의 흙냄새가 그립지도 않느냐.
너를 쓰다듬는 파동이 부추김의 소용돌이, 줄곧 너는 어리석다.
그리움의 정서, 동시대의 무중력 속 극한을 발산하는 진자의 진폭을 봐야 할 테지.
초현실적, 카오스 아래 고삐 풀린 늙은이 자전거.
혼돈의 질서, 형광을 빛내는 붉은 네온사인.
정적은 생각보다 짧지 않았다.
지진계에 튀는 석회빛깔 물방울이 이상(理想)관념을 깨뜨렸으니.
얼음 조각
내 모든 신경 하나하나와 피부 조직의 말단은 얼어붙었다.
겨울의 무자비한 혹독함이 지나고 따스함이 내게 돌아온다면,
얼음 조각들은 물이 되어 나를 휩쓸고, 나는 그에 밀려 고통의 도가니에 뚝 떨어진다.
벼랑 끝, 급히 얼린 나의 상처가 녹아 흘러내리며 썩은 고름과 피가 다시 흥건해지고,
동상에 걸려 움직이지 않는 내 손가락 한 마디 한 마디가 복합적 감각의 고통에 아우성친다.
억지로 눌러 담아 압축시켜둔 나의 더러운 과거들이 팽창하여 구름을 형성하며,
망각(忘却)에서 벗어난 뇌의 죄책감을 터뜨려, 쓰라림의 고통에 소나기를 뿌리며 빗발친다.
추악한 악에 잠긴 대가를 피하려 급히 얼린 무감각의 얼음 조각들은 부서져 녹아 흐르고,
몇 척이나 되는 높이의 거센 물이 휘몰아치며 결국 나를 고통의 도가니로 던져 넣는다.
겨울의 무자비한 혹독함이 지나고 따스함이 내게 찾아온다면 말이다.
어린 태양
내가 어찌 감정의 학살자이랴.
줄곧 나만을 바라보던 해바라기의 애상.
미치도록 요동치는 그의 드럼 심포니.
겨우 그 선율이, 내 심금에 쏟아지는 외로움을 중화시키겠는가.
나는 햇빛.
쓰러져 가는 질책에도, 빛을 뿜으며 웃음 짓는 태양이 되기에 너무 어린 한 줄기의 빛.
나는 많이 어리다.
단지, 빛을 발산하여 얻게 되는 까무러칠 정도의 느와르 빛깔의 고통.
그 고통을 나눌 상대를, 사랑으로 가장(假裝)한 내가 어찌 살인을 저질렀는가.
나는 해바라기를 짓밟지 않았다.
그 애상과 떨림 상위(上位)의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영원할 것만 같은 태양의 열정은 식어가고 있었으니.
해바라기와 태양이 사랑이 어찌 감정의 학살이랴.
껍데기의 조각
엄마 뒤에 숨은, 분홍빛의 단발 여자 아이.
열등감의 그림자가 엄마 뒤로 뻗쳐오며 아이를 조각내었다.
한 조각, 두 조각…
마저 새기도 전에 거칠고 험난한 풍랑이 아이를 집어삼키며,
안착한 고독한 혼돈의 강가.
아이의 눈은 붉게 상기되며, 그녀의 머리카락은 점점 길어갔다.
모든 조각 덩어리는 강가에 뿌려지고,
시간의 흐름이 조각들을 바람에 흩날려 마침내 퇴적시켰다.
바람을 거쳐 소녀가 조각난 뒤, 쌀을 까부르듯 마침내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조각 안에 감춰져 있던 보석.
그 보석이 미치도록 빛나기 시작했다.
‘내 모든 조각이 돌아올 때. 그 때까지 너를 지켜줄게.’
그렇게, 조각은 껍데기에 불과한 쓰레기일 뿐이었다.
아, 인간은 경험으로만 깨닫는 껍데기의 동물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