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차 창작 콘테스트 시부문 공모 - <유자를 씹으며> 외 4편

by 한세은 posted Apr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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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를 씹으며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

그녀의 손등을 간질이는

그 어느 평범한 봄 볕 아래,

가만히 누워있던 그녀가

마른 텃밭처럼 쪼그라든 몸뚱이를 일으켜

유자를 썰기 시작한다.

 

, 동구야.

느그 아버지는 평생에

이 할미가 맹근 유자가 제일로 맛있다더라.

별 건 없지만도

이래 자근자근 썰어서 청()이라도 담가주면

남기는 법 없이

싸악먹어치우더란다.

 

봄볕에 홀려 그 무거운 몸을 등지지 못하는 듯,

유자에 홀려 그 노오란 즙을 손에 버무리듯,

그렇게 그녀는 계속해서 읖조렸다.

 

우리 아들이 살아있었더라면

유자(有子)라면

 

지금보다 유자(柚子)가 더 향긋했을까나.

 

 

    


 

푸른 산호초

    

 

물이 너무 맑은 탓에

그만 빠져버렸다.

 

물이 너무 맑은 탓에

그 수심(水深)을 차마 알지 못했다.

 

문득 봐버린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 자태에

나도 모르게 넋을 놓아

헤어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입을 맞추어볼까

차마 그러지 못해

아쉬움의 손길이 물길을 스치운다.

 

너에게 닿기까지 일흔 아홉 제곱근

그 수를 헤아리다 지쳐

너를 향해 잠들었다.

 

산호초야.

너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바라만 봐도 좋으니 그 자리에 있어다오.

 

 

    


 

연금술사

    

 

위대한 업의 비밀을 알고,

그 비밀을 사용할 줄 아는

연금술사 J를 찾아나선다.

오래된 낡은 교회를 지나쳐

커다란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고

안달루시아의 들판을 가로질러

사막의 길에 도달한다.

 

이미 쉬어버린 포도주를 한 입 머금고

변덕스런 여인네 같은 모래먼지을 유심히 바라본다.

저 어딘가에서 J를 만날 수 있을 거야.

봇짐을 고쳐 매고 다시금 발을 뗀다.

모닥불도 없고 달도 뜨지 않은 밤,

야자열매 한 움큼을 입어 넣으며 투정 없이 걷는다.

 

이튿날,

한참을 걸어도 긴 밤이 끝나지 않아

결국 잠시 멈춰서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 피곤함과 무력감을 느끼고

자리에 주저앉는다.

포도주는 바닥나고 허리춤의 작은 물병도

더 이상 찰랑이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마침 낙타몰이꾼들이 지나가며 초록빛으로 삭은

작은 물통을 건넨다.

그리곤 낡은 담요를 꺼내

하나 둘 눕기 시작한다.

 

저어기 보이는 저기가 오아시스요

어째서 지금 당장 저곳으로 가지 않는 거죠?

 

이보게,

지금은 잘 시간이오.

    



 

 

햇빛사냥

    

 

태양을 뜨겁게 달구자

가랑비 축축이 내리는 쌍빠울루의 하늘을 뒤로한 채

태양을 뜨겁게 하자

 

태양에 불을 당기자

시커먼 암두꺼비의 유혹을 뿌리치고

태양을 따갑게 비추자

 

불 같은 붉은색을 잊어버려 백발이 되어도,

약한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촛불이 될지언정

태양을 바라보자

그리고 달아오른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자

 

 

    


 

광란자

   

당신이 사는 곳을

나는 알고 있죠

당신이 사랑하는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것도 보았죠

그 누가 당신을 따라다녀도

내가 당신의 눈동자 속에

함께 있다는 것을 모를 거예요



이름 : 한세은

이메일 : seeun0151@gmail.com

연락처 : 010 - 2157 - 5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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