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한국인 창작 콘테스트 시부문

by 탐미주의 posted Jun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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耽美主義


꽃 모양으로 지은

 

건물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남발되는 사랑의 냄새를 맡다가

 

흠뻑 취해

 

기절하고 싶었다

 

아름답지 않은 사람도

 

아름다운 것에 본능적으로 끌릴 수 있다

 

일방통행의 이별을 잊고 싶었고

 

하루 정돈 배를 든든히 채우고 싶었고

 

아랫집 신경 안 쓰고 춤을 추며

 

큰 목소리로

 

염불을 외우고 싶었다

 

마음을 다스릴 일이 필요했다

 

공공건축상을 받은

 

꽃 모양의 건축에서

 

사랑을 만지고

 

사랑의 이목구비에다 점수를 매기고 싶었다

 

아름답지 않다고 나를 버린

 

꽃 같은 그녀를 무너트리고 싶었다

 

 


처음부터 환멸의 꽃을 꺾으려던 건 아니었다

 

 

질투가 많은 사람이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힘이 들었다 아무것도 읽지 않아도 누군가와의 삶을 비교하고 따지게 되었다 너무 깨끗한 벽이 재수가 없고 너무 희미한 조명이 불나방을 타 죽이는 게 재수가 없었다

 

하나뿐인 목숨을 다른 하나뿐인 목숨과 비교하게 되었다

 

어차피 지쳐 떨어져 죽을 불나방을 미리 포획하고 싶었다 아직은 생생한 날개를 찢어 미술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전시하고 싶었다 나 하나로도 이 넓은 공간을 다 채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더 나아지고 싶었다

 

 

 

 

 

일생

 



페스트로 온 나라가 위기에 빠져있을 때

 

산악인은 등반을 했다

 

작가는 글을 썼고

 

바다에 매료된 화가는 한평생 바다를 그렸다

 

애인들은 재잘거리다

 

밤만 되면 입을 맞추었고

 

아침이 되면 다 잊었다

 

매일 술에 취해있는 사람은

 

매일 술에 취하려 노력했다

 

쥐가 죽고

 

먹을 건 다 못 먹는 것이 되었다

 

세상은 환기가 되지 않는다

 

다 똑같은 숨을 쉬고

 

똑같은 하늘과 바다를 나눠쓰는

 

이들은

 

다 똑같은 물감에 흠뻑 적셔져

 

다시

 

밥을 짓고 술을 담그고

 

사랑을 나누고

 

이 질긴 질병을 이겨내려 애썼다






여럿


 

백만장자는 포도를 싫어했다

 

한 줄기를 여럿이서 나눠쓰는

 

대부분의 열매와

 

대부분의 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했다

 

한 줄기에 하나만 돋아나는 꽃은 마음에 들어했어도

 

꽃의 얼굴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수십 겹의 머리칼은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여럿이서

 

하나를 나눠쓴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들의 삶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성격차이

 



채식주의자인 그녀와 8개월간만 사랑을 나눴다

당연히

헤어질 줄 모르고 시작했던 관계다

 

어깨도 주물러주고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흘리는 눈물마다 깨끗이 닦아주었다

 

착한 척하지 않아 좋았다

굳이 육식을 해서

사람들이 포악한 건 아니랬다

 

사람의 성질과

타고난 본성이

육식과 채식과는 별개의 문제

 

개개인의 문제랬다

틈만 나면 우는 그녀를 8개월 내내 이해 못했고

틈만 나면 화내는 나를 그녀는 이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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