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향> 외 4편

by 결따라 posted Jun 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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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워진 그때부터 타들어 간다

하늘에 닿으리라 하며

누구보다 뜨겁게 타들어 간다

회색빛 연기는 연거푸 솟아올랐다

제 몸 불사른 연등일지도 모르고

기쁜 듯 안쓰럽게 또 아름답게 솟아올랐다

적막과 고요 속의 한 점 빛은

그 뻣뻣한 고개를 들어서

회색 하늘을 꼿꼿이 지켜보았다

향재가 눈에 들어가서 흘린

찔끔 눈물 한 방울을 닦아주려는 듯이


내 젊음아 조금만 더 타올라라

힘겨운 가슴으로 온종일 기구하듯이


그러다가

그러고 있다가

조금 남은 향의 타고 있는 곳

굳은 맨손으로 잡아 꺼본다

타올라 산화하는 향의 생애가 

그저 고달파보여서가 아니라

해 다 진 곳에 피어있는 검붉은 장미는

짙게 밤 향기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깊어만 가는 새벽의 한때에서

다시 타오를 무언의 불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안개꽃


꽃들이 만발하여 자신을 뽐내는 어느 꽃밭에

조그마한 장미가 여린 꽃잎을 힘겨이 펴내며

다른 꽃들에 지지 않으려는 듯 자신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꽃잎이 뻣뻣해 아팠던 장미는 자신 주위에

형형색색 꽃들에게서 살짝

아주 살짝만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꽃들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옆에서 그들을 배려하고 사랑해주는

미약하지만 그렇기에 너무나 향기로웠던

안개꽃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요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다는 것은

특별하지 않은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요


장미는 안개꽃이 고마웠습니다

고개를 꼿꼿이 들기보다는

아래를 볼 줄 아는 것이

더 향기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변하지 않는 것


한여름 습한 더윗바람은

그 겨울 마른 잔가지를 덥혀주지 못하고

이듬해 봄 흩날리는 벚도 

잔가지와 아름다운 이별하고 맙니다


이렇게

시들지 않는 꽃은 없기에

오늘도 예쁜 향을 내려

턱 꼿꼿이 치켜듭니다

그러고는 살며시 웃습니다


변하는 것을 알기에

변하지 않도록

작게나마

노력합니다


어른


어른이 되어간다

투명하고 마알간 눈 가진 아이가

하나 둘 

색안경을 겹치고 겹쳐 써간다


열정과 이별이 만나 보랏빛 고독이 되고

어린아이와 푸르름 만나 초록의 여름이 된다


새로운 색을 보고, 살며시 눈속에 넣어본다


후에 시간이 지나

충분한 색이 겹쳐졌을 때엔

중후한 까만 물감물도 좋겠지만

찬란하게 하얀 겹친 빛이 되어주렴

포근한 햇빛을 내는 사람이 되어주렴

비 오는 날


빗소리에 흐려지는 목소리를 애써 흥얼거리는 내 모습

고여진 빗물에 비추어진 것을 봐버렸다


오색 조명 간판들 속 무채색으로 칠해진 내 눈가엔

시린 풍파로 녹슬어버린 쇳물로 치장됐고

오랜 기억 더듬어가며 뒷걸음질을 하는 듯한 동공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하는 텅 빔뿐


곁눈질하고 눈을 피하고

설움에 가득 차 보지만 담아내질 못하고

꽉 쥐어보려던 주먹은 풀려버리고

그저 아무 벽에 기대려는 못된 기울임


회색 담배연기로 가득한 하늘에게

한숨과 실망으로 원망해보지만


어쩔 수 있나


빗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축축이 젖은 발을 옮기는 수밖에

무딘 마음을 억지로 추스르는 수밖엔



박창완 01064396269 dhks08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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