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장 근처 외 4편

by 풋사과 posted Jul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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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차장 근처

 

죽은 속도들이 야적장에 포개져있다

얼마나 밟았으면 속력이 너덜너덜 해졌을까

비명은 중앙 분리대에 납작하고

찌그러진 웃음들은 코를 꿰어 끌려 왔다

시트에 배냇짓이 구겨진 채 말라 가고

분해된 차체가 벌건 각질을 흘린다

선혈 자국 선명한 골절이 일그러져 있고

크레인은 압사된 사채위로 코를 박고

고목 은행이 한 겹 두 겹 옷을 벗어

바람의 사체를 덥어주는 늦가을 오후

노오란 장례식장은 곡소리도 없이

볕뉘는 등 뒤에서 통곡하고

무당거미가 상주자리에 은장막을 칠 때

유영하는 은행잎이 황금 염을 한다

참새가 조객으로 문상하는 폐차장 근처

갈바람에 철판이 추도사를 읽는 동안

또 객사한 한 생의 속도가 끌려 들어왔다

 

 

  초인종

 

까마귀의 날개에 그으름이 필 때

나를 잃어버린 순백의 *손길이

급기야 그으름을 털어 내고요

털어 낼 수록 검어지는 손과

예사롭지 않은 벨소리가 불길에 울고요

마침내 백로떼, 높이 날아 오르면

하늘에 하얀 융단이 깔려 있었죠

초인종 소리에 손을 굽는 까마귀가

홀로 비상구에 애절히 지저귀고요

매연 속에서 검은 음성이 꾸역꾸역 피어날 때

그의 손은 그으름을 뚝뚝 흘리고 있었죠

순수가 갈증에 까맣게 타는 소리

연막속 백로떼 벨소리로 울어대면

하늘위 까만 융단이 슬픔을 글썽였죠

 

* 불속에서 초인종을 누르며 생명을 구한 안치범씨의 손

 

  빨간 복어

 

복어같은 빨간 동전지갑을 선물로 드렸다

바짓주머니를 바다로 흔쾌히 내어 준 어머니

과거를 반쯤 잃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더는 잃지 않으려는 애잔한 몸짓들

과거의 패보다 현실의 패가 더 화려하다

굽이치는 생도 어차피 가다가 서는 것

go를 외칠 때마다 태양같이 밝은 복어

주린 시간을 걸신처럼 먹어 치운다

쓰리고에 지갑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면

날치알같이 산란지로 날아오는 굽은 허리

슬며시 뭍에다 빨간 태양 하나 꺼내 놓고

장패를 붙이듯 매운 손으로 해를 가른다

산란하듯 촤르르 쏟아져 나오는 황금알들

언젠가 매출액을 간주하던 버릇이 남아

십층 금탑에다 허기대신 녹슨 기억을 쌓는다

무수히 무너지고 다시 쌓은 무심한 첨탑에

생의 옹이마다 주린 기억들이 달그락 거린다

복어는 기억을 갉아먹고 스톱을 외친다

그리고 금탑 속으로 걸어 들어간 후

비문의 장막에서 나오지 않았다

 

양말은 계절을 모른다

 

남자의 바느질은 계절이 없다

출근 시간에 양말을 신다보면

맹맹해진 계절이 불쑥 튀어 나온다

대지가 꽃잎을 밀어내 듯

봄이 불쑥 발가락을 내 민다

새 양말을 신을 때마다 걷어 차이는 계절

여름이 비대해져 울타리를 넘는 넝쿨들

발톱이 양말의 경계를 허문다

숭고한 경전 앞에서 벌을 내리는 중이라

꿰맨 계절이 툭 튀어나오는 버릇을 고칠 수 없다

여름을 갉아 먹으면 발가락이 나온다

유난히도 사내는 계절을 갉아 먹었다

면사의 재질엔 욱하는 성질이 숨어있어

아침마다 불쑥 내미는 버릇이 되어버린 건지

계절은 바느질 하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출근 전쟁으로 봉쇄된 발을 꿰매는 아침

걷어차이는 계절의 코가 또 맹맹해진다

 

 

 청자의 빛

 

저 말알간 어께로 눈물이 쏟아진다면

몇 말의 빛으로 담아 낼 수있을까

성좌에서 발아한 한 줌의 눈물일까

우아한 자태로 펴는 학의 날개 만큼이나

청아한 숨을 고르고 있는 푸른 수정이다

잘룩한 허리를 끼고 통과하는 실바람과

박산의 놀이 바위 위

한 그루의 청솔이 구름을 이고

가마 속에서 신열을 앓아야만

저리도 영롱한 빛으로 글썽일 수있다

솔 숲을 지나면 사슴의 무리

눈길이 닿는 하늘과 땅이 합일된 점토는

솔잎이 불빛을 찍어 넣어서 인지

눈물방울이 빛으로 스며 들고

어께와 열정의 가슴이 마주한 이슬은

도공의 혼이 녹아든 땀일 것이다

저 말알간 눈시울에 뚝뚝지는 설움을 보면

청초한 빛 한 자루 쏟아낸 학골에

전설이 끌밋하게 흘러 내린다

 

 

주소: 서울시 노원구

성명 : 최병규

전화 : 010-2753-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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