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악한 동물
승객은 명확했으나 도착지는 모호했다
초점 잃은 노선의 어색함의 몸을 맡겼고
고요히 줄렁이는 좌석에 몸을 뉘었다
어디서 출발하여 어느 곳으로 가 닿는가
관자놀이에 대못이 박힌듯 찌르는 두통은
고통을 배송했고 맥 없이 손을 뻗었다
명확이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상자
아픔의 수취인은 오롯이 나
서명하는 것은 숙명
달리는 기차에 덜컹거리는 소음
그리고 그 안에 잔잔함
무엇으로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내 몫이고
선택지 위에서 망설이다 펜촉이 부러졌다
누려본 적 없는 허상은 무엇을 근거로 실재하는가
그리해도 끝없는 고민의 반추, 망상 속에 갈등
흐드러지는 봄바람 한 줌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줏대 없는 사춘기 같은 정서
차라리 모든 것이 잿가루 되어 사라지길 바라는
그 와중에도 나의 존재는 온건하길 기도하는
은연중 당신도 나와 같길 앙망하는
실로 영악한 동물
연륜
당장이라도 두 동강 날 수 있는
난파선을 타고 있습니다
시선은 굽이치는 파도가 아닙니다
금이 가고 있는 바닥이 아닙니다
뭍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시끄러운 곳에서 고요함을 훑습니다
삼삼한 맛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우울함 속에 즐거움을 찾습니다
쓰지만 되새기다 보면 단 맛이 납니다
보내기 위함입니다
수평선 너머로 밀어내기 위함입니다
전래동화
같은 적도 아래 같은 시분초를 두고 살아가는데
고개를 꺾고 올려 본 하늘구름의 모양은 많이 달라
이곳의 길고양이들은 말라 갈비가 보여가는데
그곳의 길고양이들은 때깔 좋게 살이 뒤룩뒤룩 쪘다지
여기는 농약을 치지 않고서
달콤한 토마토를 거두기에는 하늘에 별 따기라는데
그곳의 흙밭에는 은하수가 펼쳐지고
달달한 과즙에 사방으로 퍼지고 있다지
사람 사는 곳이 거기서 거기라고 하는 말
나는 진짜 잘 모르겠더라고
토끼를 이긴 거북이는 한평생 낮잠을 자지 못했대
저만치 앞서서 쿨쿨 자고 있는 토끼의 궁둥이를 보고
불안함에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는 거야
혹시나 토끼가 야속한 선잠에서 깨어버리면
또 미친듯 따라가야 하니까 말야
그런데 대부분의 토끼는 잠이 없더라고
심지어 토끼도 자기가 빠른 걸 아니까
달리는 걸 즐기더라는거야
허무함에 몸을 숨겨버린 거북이는
한참 동안 세상 밖을 나오지 않았대
제 몸을 지키던 갑옷이 도리어
외로운 관뚜껑이 될 줄도 모르고 말이야
닻을 내렸습니다
그곳에 닻을 내렸습니다
심해 깊은 곳으로 무거운 쇳덩어리를
뒷 생각하지 않고 밀어버렸습니다
언젠가 끌어올려야 할 날이 오겠지요
살가죽이 들뜬 손에 물이 괴도록
끙끙거려야 할 날이 올지도요
사실 그런 날을 알기에 닻을 내렸습니다
이제는 올릴 수 없다는 변명과 함께
꼬질한 나룻배를 당신에게 영원히 정박하려고
굳이 그곳에 닻을 내렸습니다
성명 : 김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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