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회 창작 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5편

by 출가인 posted Oct 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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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면


네가 내게 날린 겨울바람이 나를 스치듯 베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그렇다면 우리의 필름은 희극이었을까.

아님 그저 그런 B급 영화의 비극이었을까.


네가 내게 남긴 명장면이라 생각 하기로 하였다.

우린 하늘빛 안개꽃을 드리웠으니 말이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색이 바랜 필름을 꺼내들어,

어둔 방 홀로 서 영사기를 틀며 웃을 수 있을까.


순간의 순간


매 순간이 그리워 질 때가 있다.

하하호호 웃으며 들썩이던 이팔청춘이 그랬고,

따듯함 속에서 빠져나와 한껏 들이킨 공기가 그랬고,

이제는 맛 보지 못할 어머니의 밥상이 그러했다.


때때로 파내어지는 파편들과는 다른것이 있었다.

당신과 함께한 날들이 그랬다.

이따금 떠오르는 시간들이 아닌

매 순간의, 영원의 순간이다.


어쩌면 찰나일지도 모르지만,

나를 무한히 잠식한 그대의 순간이다.


초가을의 소요


가을이다. 괜시리 마음 한켠이 아련하게 아려오는 가을이다.

시리던 마음은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며 녹았을텐데,

또다시 메말라 가기만 하는구나.


이따금 하늘을 당기는 노을을 지켜본다.

아픈 나를 보듬어 달라고, 속삭여 보지만 듣는이 없어,

햇살에게라도 말하는 것이다.


말라버린 나를 조금은 적셔줄까 싶어,

송사리 뛰노는 개울가에 발을 담궈 본다.

초가을, 노을을 담고있는 물길은,

그래, 아직도 시리구나 싶었다.


이젠 가야지. 청고한 가을 하늘 바라보며 아픔을 지워가야겠다.

파아란 도화지 수놓은 하얀 나래는

마치 뭉게뭉게 피어나는 내 그리움과 같아서,

하염없이 차가워지는 가을을 펼친다.


작은 흔적을 돌아보며


흔적 투성이였다.

비라도 왔는가, 진흙탕에 굴렀나.

온 몸이 흔적 투성이다.


사람들은 몸에 흔적을 새기려 애를 쓴다.

누군가 나를 원한다는 증거가 필요한 탓이다.

사람은 사람에 굶주렸고, 그렇기에 갈망한다.

나흘은 족히 굶은 오아시스의 나그네마냥 흔적을 탐한다.


그렇게 하염없이 새김에 집착하며, 조금의 휴식을 위해,

나를 더듬어 보았을 때, 작은 흔적 하나를 발견하고는,

별거 아닌 균열이었다. 무엇인가 싶었다.


틈을 비집고 파내어 조심스레 살펴본다.

설렘과 두려움 사이에서 추억이 피어오른다.

차갑게 살랑이는 불같은 바람이다.

네가 나에게 남겼던 천일홍의 향기다.


그래. 그때의 우리는 차가운 불과도 같았다.

순간적인 감정에 얽매여 모순적인 사랑을 했다.

시리게 타올랐기에, 백색의 재만 남았고,

재의 기억만이 이부자리를 깔아준다.


우리의 사랑은 잉걸불이 아니었기에, 그렇기에

그을린 흔적을 남길수가 없었기에.

후벼판 균열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별바라기


그대를 헤아리며 서리 내린 밤하늘을 문득 바라보았다.

공허에 일렁이는 백색의 별은 누군가를 데워주고 있겠지.


되새겨 보니 그랬다.

그대가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었었다.

그대는 나의 별이었나보다.


그래, 그대는 나의 별이요, 나는 그대의 새싹이었다.

잃고 보니 그대 없는 세월은 나의 허무일 뿐이구나.


한 걸음만 내딛으면 그대에게 닿을 것 같은데,

여기에 흩날리는 아련함의 편린은 그대의 파편인가.


산산조각 난 기억의 단편들을 모아서, 

모아서 만든 것은 작은 조각배 하나.

별이었던 그리움은 이제 성난 해일이 되어버린 백곡왕을 유람한다.


굴하지 말아라. 거센 폭풍에 꺾이지 말아라.

고요함을 되찾는 그날까지 굳세어라 조각배야.

그래야만 너는 새로이 뜬 별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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