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차 창작콘테스트 시 공모 <내 것은 사랑이 아니라한다> 외 4편

by or24 posted Dec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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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녹으면

 

 

나는 그 말을 슬퍼했다.

눈이 사라진다는 뜻이므로

하지만 너는 그때마다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괜찮다, 괜찮아

그저 물이 된다는 뜻이므로

흙이 된다는 뜻이므로

네 발바닥에서 함께한다는 뜻이므로

 

나는 여전히 그 말이 슬프다.

너는 눈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므로

나는 흙이기에 느낄 수 있는 마음이므로





 

꿀꺽 삼키더라고,

고작 한 모금이라면서

 

그대로 흘러갔더라면

꽃도 피워보고, 고양이 발도 적셔보고,

어쩌면 운이 좋아 바다가 됐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꿀꺽 하더라고,

고작 한 모금밖에 안된다면서

 

내 모든 봄과 자유와 푸른 꿈을

한 번에 꿀꺽 꿀꺽!

 



애칭

 

너를 남들과는

 

다르게 부르고 싶고

 

나는 너에게서

 

다르게 불리고 싶고

 

그 욕심이 시작이었나




다시 한 번

 

 

미지근한 늪에 발을 담그고

화형당하는 꿈을 꾼다

 

좁은 항아리 안에서

절벽 끝에 손가락 몇 개 걸쳐 매달린 모습을 상상해본다

손가락쯤 부러져도 제 몸을 올리려는

그 피마름을 주소서

 

사계절이 바람 같은 세월 속에서

1095일을 기다렸다가 찢어지게 우는 매미 소리를 듣는다

고작 보름 만에 땅으로 곤두박질 칠 몸이라도

그 짐승 같은 울음을 주소서

 

잘 다려놓은 입가를 하고서

마주침 한 번으로도 일주일이 단내가 나던 손수건은

새옹지마라는 말이 무서웠더라도

그 황홀함을 다시 한 번만

 

시원한 강바람을 쐬면서

뼈가 깨지는 얼음장 꿈을 꾼다

 

 

내 것은 사랑이 아니라한다

 

 

소담스러운 가마에 시원한 물 넣어놓고 귀한 님 모시러 가본다.

발목을 간지럽히는 수풀을 헤치고 살랑살랑 걸어가 고개를 들면

치마폭 날리며 눈을 어지럽히는 매끈한 몸통이 혹여 다칠까

조심스레 손가락 끝으로 긴 허리즈음 찾아 톡!

얼른 가마에 태워 돌아오니,

꺾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한다.

 

손길타면 혹여 그 눈길도 따라올까 내 머리카락 못 잊을까

상처 입을까봐 손톱은 말아 넣고 손등으로 살살 솜털만 비비다가

텅 빈 지갑과 꽉 찬 시계 들여다보고 한 숨 한 번 미련 한 줌

더 좋은 사람 만나라 빌어주고

겨우 내 비관에 빠지려하니,

포기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한다.

 








                                                                                                                                                                      류현

                                                                                                                                                   orer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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