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차 창작콘테스트 시부문_무덤 위 아이 외 4편

by 김day posted Dec 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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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위 아이

 

day

 

한 아이가 무덤 위에 서있다

 

너무 커서 작은 언덕으로 보이는 무덤 위를

밟으며 올라타며 걸으며

사람들이 오지 않아 아무도 날 말릴 수 없어

 

작은 언덕은 꼭 세상과 동떨어져있는 것만 같아서

사실은 이건 꿈인 거야 아이가 속삭인다

 

꿈속에서만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서

무덤 위를 지나 무덤 속을 들어가 도착한 곳

아이의 키까지 자라난 잡초들뿐이었다

 

그곳으로 가면 아무도 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무덤은 한 사람만의 것이었으니까

 

성경에 있는 커다란 돌로 막은 무덤 앞에

사람들이 언제까지 울고 있었는지

아이는 궁금하지 않았다 자신의 무덤이 아니었기에

 

엄마는 그게 제일 궁금한가봐

잡초들이 많으면 날 찾을 수 없는데도 괜찮나봐

 

다시 무덤 위로 올라가자

잡초들이 뒤따라 아이 위로 올라간다

오늘도 엄마는 오렌지 주스를 사놓지 않았다



밝은 밤

 

day

 

침대에 바로 누운 상태에서 그날따라 밝은 밖을 바라본다. 달이 창 가까이에 기대선 건지, 내가 달에게 가까워진 건지 모른다. 알고 싶지 않다. 달 너머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술에 취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평소에는 내지 못했던 그 목소리가 울분과 함께 들려온다. 듣고 싶지 않다. 나도 그 속에 있는 것 같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집 때문에 나는 밤마다 사람들의 내면을 본다. 그 내면에는 낮에 내뱉지 못했던 설움이 들어있다. 공허함이 들어있다. 괜찮냐고 묻는 다정한 말도 들려온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들리지 않는다. 괜찮지 않다. 그걸 알아도 우리는 늘 괜찮냐고 물어본다. 낮에는 볼 수 없는 얼굴이 밤에는 떠돌아다닌다. 어두워서 괜찮은 줄 안거다. 아닌데, 사실은 그게 아닌데. 밖에는 환한 달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어둡지 않다. 너무나 밝다. 그래도 사람들은 잘 운다. 너무 어두우면 오히려 울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사람들의 신세 한탄이 들려온다. 다행히 오늘 밤에는 내가 거기에 없다. 나는 아직 괜찮은가보다. 내일은 모른다. 내일 밤에는 나도 그들과 섞여 함께 울지도 모른다. 낮에는 늘 웃어야 하는 병에 걸린 것이다. 눈을 감아도 여전히 밝은 밤에, 나는 내일도 밤이 밝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든다.



전깃줄에 걸린

 

day

 

함부로 고개를 들고 바라본 하늘에 걸린 전깃줄을 보면서, 그제야 무언가 빠졌다는 걸 알았다.

뛰어도 닿지 않는 전깃줄이란 그리움처럼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손에 닿지 않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만지면 숙연해졌던 것이다.

 

사다리를 타고 전깃줄 가까이에 가면서 생각했다. 만지게 하지 못하는 것일수록 더 자세히 봐야한다는 것. 마치 자세히 보지 못하는 타인의 그리움처럼, 나의 그리움처럼, 전깃줄도 같지 않을까. 전깃줄을 손에 닿는 곳에 두면 쉽게 감전된다. 위에 있는 이유는 전깃줄의 뜻이 아니다.

 

전기를 다 쓰면 감전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전깃줄은 남겠지. 제발 가위로 잘라줘. 나를 멋대로 보지 마. 안 그러면 네가 감전되고 말거야. 그제야 나는 사람들이 어디에 그리움을 숨겼는지 알게 된 것이다.



기도

 

day

 

우리에게 기도를 해주세요

좀 더 완벽해질 수 있게

 

깍지를 끼고 대충 맞잡은 두 손은

무너지기 쉬운 기도의 형태

 

완벽해지려 교회로 모여든 사람들은

대체 누구한테 기도하는 건가요

 

깍지 낀 두 손을 뒤집으면

부르튼 무지개 빛깔

 

손가락이 없는 아이들은

누가 기도 해주나요

 

완벽해지길 원해 모여든 사람들

손가락 없는 아이들에게 보란 듯이 손가락을 뻗는다

 

우리에게 손가락을 주세요

헌금을 낼 수 있게

 

무너질 것 같은 뒤집힌 다리를 건너며

천국에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웃음가마리

 

day

 

입꼬리에서 태어났는지

혀에서 태어났는지 그것도 아니면

이에서 태어났는지도 몰라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으면 존재했을리도 없는

우리는 정작 입꼬리가 없어

 

가질 수 없는 입꼬리를

남들은 마음대로 올리고 찢고 내리지, 우리를 향해

 

일부러 없는 다리를 내뻗으며 넘어질 뻔한 척

행동을 크게 하며 소심하지 않는 척

이상한 말을 내뱉고 실없는 소리를 하지

 

입꼬리가 없는 것은 없는 것끼리 알아본대

 

그것이 두려워 손을 입에 대고

단어로 웃음을 내뱉는 우리는

웃음가마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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