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회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 <잠식>외 4편

by 구피 posted Mar 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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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식

앙상한 뼈 사이로

푸르른 파도가 밀려 들어옵니다

아무런 느낌도 받을 수 없습니다

젖은 모래가 엉겨 붙어 거칠게 떼어내면

아무런 느낌도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파도에 몸을 맡겨
나를 잊습니다

나는 부서져내립니다

공허

시든 꽃을 움켜쥔 손에는 
전과 다름이 남았습니다

앙상한 손을 움켜쥔 손에는
전과 다름이 남았습니다

메마른 목소리로 소리 없는 목을 긁는가 하면
초연해 제자리로 돌아가는 나를 위로한다면

고요함만이
나만을 위로할 것입니다

잔해

내 열정을 태운다면
나는 내 몸마저 타버렸다 

내 기쁨을 나눈다면
나는 내 입꼬리마저 줘버렸다

내 슬픔을 마주하면
나는 끌어안아 오열했다

우울

손을 움직였다
만족스러웠다 

세수를 했다
만족스러웠다

일어날 수 없었다
나갈 수 없었다

봄날은 오고
꽃잎이 얼굴에 닿으면

황급히 밖을 나선다
나는 만개한 꽃 아래서 또 움직일 수 없었다

앙상함

떨어진 잎들을 주워
나무 위로 흩뿌리자면

가지 사이로 우수수 떨어지거나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매달린
잎은 그저 미련입니다

바람 한 꺼풀에 날아간
잎들에 앙상한 게 현재라면

차라리 앙상한 것이 좋습니다 


이름: 정일해

이메일: dlfgo99@naver.com

HP: 010-6240-8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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