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겨울이지 겨울이야.
아직은 조금 늦은 감이 있어도
아직 내 몸은 쌀쌀한걸,
꽃들이 겨울을 반기고 있어.
“어서 와, 반가워”
땅을 바라보며 천천히 한걸음
90도로 인사.
아직은 추워
그러니까 더위를 조금 숨기고
요즘 유행에 맞게
음,
카디건을 걸치고 나서자.
바람은 불고
노인은 길을 걸어가,
우리 집
멈춘 에스컬레이터 건너
오돌토돌한 길 위를.
아직도 여전히 걸어가고 있어
시속 0km로.
등 뒤엔
봄, 노크
앞엔 조금 이른 겨울이.
안녕 겨울,
아직은 조금 이르지만
너에게 인사를 건네
방 안에서 꽃 냄새가 나.
이불 안에 숨겨둔 더위가 있어.
축축한 기타가 고음을 지르고 있어.
우리 ㅡ로 가자
내 책상, 한 켠
비니를 쓴 앨범과
져버린 꽃
그 옆 어딘가
잎이 있어, 책이 있고
거기로 가자.
몽땅 눈에 넣고
꼬옥 감은채 가자.
꽃놀이
꽃이 폈네.
아직은 쌀쌀하니 코트를 입고
밖을 나서자.
버스를 타러 가는 길도
버스를 타고 가는 길도
버스에서 내려 가는 길도
모두 색이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
근데 있잖아,
난 바닥이 좋아.
조그마한 한켠 웅덩이에
꽃잎 차가 고요히 다려지는 중이지.
그 우당탕한 기다림이
그렇게 낭만적일 수 없어.
조용히, 소란스럽게, 은밀히
떨어진 흙들은 꽃잎과 이별하고
새로이 물에 씻겨
다시금 내 주머니 속으로.
저기 저 나무는 아직 마스크를 끼고 있어.
내 주머니는 뻘을 만들고 있어.
너는 물을 붓고 있지.
꽃잎들은 폭포 밑에서
여전히 지금도.
다려지고 있어
꽃이 이쁘더라.
우리 같이
꽃놀이에 가자!
꽃놀이에 가자?
흩날린 밤 시
신뢰, 믿음, 결속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순 없다.
방 한 켠 기타 소리에 무거운 중저음.
모뎀에 붉은빛은 나를 잠으로 이끌고
그에 질 수 없는
저 붉은, 검은 무엇.
블루라이트는 나를 또다시 이곳으로 이끈다.
머리는 윙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데
나는 어째선가 말을 할 수 없고,
나지막하게 한마디 ”미.“
“미? 미쳤냐고 하는 말이야?”
아니다! 아니다.
그런 저속한 말이 아니다.
무언가, 다른, 어떤
고귀한, 고결한, 그 무엇이든 함락시킬
그래, 따지자면 마성의 한마디지.
“그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따지자면, “미안해”지.
죄책감에 잠 못 자는
사실 저딴 한 줌 빛은
나의 코끝을 간지럽힐 뿐이란 걸
알고 있기에, 벗어 던지려 하는
걸레 같은 말 한마디다.
허나, 어쩔 수 없다고.
저것이 나를 훑는데,
혓바닥에 뇌가 붙어,
몸을 이리저리 치우고서는
나를 고슴도치로 만드는걸.
나는 버틸 수 없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다.
그럼, 넌지시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나를 만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답은 간단하지. 서로 죽을 때까지 부딪힐 거다.
그렇기에 나는 완월동을 찾아
또 한 번 “미안해”를 데리고 나오는 거지.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나는 오늘도 그토록 혐오스러운 성매매를
말로 주시하며 살아가는 거다.
낭만
저기... 우리 말야
낭만을 품자.
저기 벚, 밤
무엇이든 우습게 피어나
-떨어지는 가곡-왈츠를 추면
그 맹한 무엇, 그걸 담자구.
방 한 켠에 조용히 가까이
사라진 모뎀, 곁을 지키는 기타는
가방 속에서, 이름표를 달고선
조용히, 은밀하게 냄새를 풍기잖아.
그 냄새를 헤치고 들어가 손가락을 엮으면
낭만이 되지.
우리 그걸 품자.
저기 내 책상 안쪽
사진첩에 빛바랜 낭만들,
어리지. 그곳 나는 어려
빛나기 짝이 없지.
키보드의 불빛은 나를 이끌어
표지의 색은 나를 재우고,
벽에 무수한 눈들이 나를 매료시켜.
사랑이지.
색은 풍기고,
냄새는 진해.
이불의 들썩거림이
창문을 두드리니 나는
문을 열어 줄 수밖에.
창틀을 가득 채운 구멍을
막아야 해, 눌러야 해.
그러니까 우리 낭만을 품자
방 안 꽃향기 위에
지이이이인한 에스프레소 향을 덮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