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부문 응모

by huit posted Dec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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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


그거 죽이기 참 쉽잖아요

다섯 살 난 꼬맹이도 두 손으로 콱 쥐면 꽥하고 죽어버리는 거

온 힘을 다해 꼬리 쳐서

내 친구 먼저 잡아가세요

손등에 지느러미를 아슬아슬 스치고

휴 살았다

휴 나는 살았다

그것도 경험이라고 누적이 돼서

자신감이 붙어 두 눈을 위로하고 준비하다가

온다! 손이 온다!

세차게 퍼덕퍼덕

또 다른 친구가 잡혀가고

휴 살았다

휴 나는 살았다

실상은 꼬맹이의 두 손을 피한 것뿐인데


생각해보니 이곳 민물은 조금 이상하다

민물이 이리도 붉다니요

새빨갛고 좁은 대야 속 징그럽게 퍼덕이는 미꾸라지들 중 하나라니요






무제


못난 나를 발견했을 때

회피하는 거 말고

핑계 대고 탓하는 거 말고

눈을 질끈 감지 말고

그렇다고 싸우자고 부릅뜨지도 말고

일곱 발자국쯤 떨어져서

큰 보폭으로

하나


...

일곱!

마침내 등을 돌리니 비로소 보인다

행동하지 않고

나 자신과의 타협으로 일을 마무리하려는

그 바쁜 뒤꽁무니

어디 가니 돌아와

심지어 나의 부름에도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더라






여행

결국은 다 잊게 될

지금은 익숙한 것들

가까운 마트

아이스크림 가게

신기했던 그 음식

그러나 결국은

맛도 호기심도 즐거움도

하나의 덩어리로 남아

자세한 글씨는 세월의 바람에 지워질 것들






헤엄

뜨거운 햇살 아래 출렁이는 외침

멈출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어

지금까지 온 것을 생각하기에는 앞으로 갈 길이 멀어

저만치 보이는 섬

금빛 모래 섬

그곳에 먼저 닿은 이들의 영광

자신이 서 있는 바다의 넓고 깊음이나 자유로움은 모르고

그렇게 열심히 진동을 타고

파도는 모래를 향해 달린다

눈이 시뻘게져서

모래에 닿는 순간 부서져 버리는 줄도 모르고

이미 겁먹은 심장을 움켜쥐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자맥질하며






슬프면 슬프다 한마디 하면 되지

슬프면 슬프다 한마디 하면 되지

외로우면 외롭다 한마디 하면 되지

아예 입을 닫아버리거나

모든 것을 떠들어버리거나

그게 무엇이든 끝까지 삼켜 소화하거나

목구멍을 넘기지 못하고 전부 뱉거나


즐거우면 즐겁다 한마디 하면 되지

힘들면 힘들다 한마디 하면 되지

부끄러움에 도망치거나

고독에 못 이겨 눈물짓거나


적당히를 몰라서 외롭거나 수치스럽거나

머리로 백번을 이해해도

흔들리고 흔들려서

멀미가 나거나

바다에 빠져버리거나








정희윤 huizzz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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