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차 창작콘테스트 시부문 응모-발 외 4편

by 닐리리요 posted Oct 01,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발>

꽃잎은 발이 없어 떨어진다
운이 좋으면 바람을 다리 삼아
하늘까지 달려가기도 하지만
걸을 수 없는 꽃잎은 일제히
청춘을 미련 없이 벗어 던진다

사람이야 두 발 달린 짐승이니
어딘들 아니 가리요마는
때 아닌 눈발 날리우던 그 봄
죽은 꽃잎으로 꽃신을 삼아
잠이 없는 그 사람이야
오로라의 밤에게로 가 안기었다
다리는 걸으라고 있는 거고
길은 가라고 있는 법일테니
제 입 맛에 맞는 길을 찾아
다들 그렇게 잘도 가건마는

잠이 유독 많은 사람은

쉽사리 사랑의 단 꿈에 취하여

사지 멀쩡하니 두 발 성하여도

스스로 한 자리에 묶여서

한참을 오도가도 못 하고
마음 급한 발만 구르고 있다
꽃잎은 발이 없어 못 가고

쉽사리 중독되는 어설픈 사랑꾼은

발이 있어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생각>

생각을 펼쳐놓고
잠시 정지 상태로 머물러보자
순도 높은 그리움의 알갱이들이
세월을 거슬러 올라
잊고 살았던 그 사람의
이목구비를 따라 흘러든다
숨을 뿜어내면
봇물 터지듯
일순간 부질없는

상념들이 범람한다
사색의 아무 귀퉁이든
단단히 잡고 툴툴 털어보면
연소된 기억들은 날리고
그 사람의 이름이
허물어지는 기억력 속에
잠시나마 깊숙히 음각되어진다





<무궁화가 피지 않습니다>

곰이 마늘을 먹고
호랑이도 담배를 피던
살기 좋은 시절에는
무궁화가 피었습니다
가난하고 힘 없어
빼앗긴 땅은 다시 찾아도
무궁화가 피지 않습니다
남의 힘으로 찾은 땅이니
온전히 찾은 것도 아니며
짓밟히고 뿌리 뽑혀진
정신은 망명객의 신세입니다
배고픈 선비는 틀렸고
돈 많은 오랑캐가 진리라며
너무 쉽게 얼굴도 뜯어고치고
아무렇지 않게 족보도 바꾸고 보니
아무도 무궁화를 몰라봅니다
다시 찾은 땅이 낯섭니다
참 주인은 모두 사라지고
객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눈물 젖은 흙에다 몰래
지금은 무궁화를 심습니다
6
대륙의 모든 사람들 가슴에
무궁화는 기여히 핍니다



<꽃같이>

꽃들의 군무 앞에서
과도한 생각은 불경스럽다
꽃잎 하나에도
깨알 같은 가르침이
정성스럽게 음각되었으니
잠시 걷는 꽃 길이
수십 만 권의 경전을 읊는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제 자리를 아는 까닭일까
올 때 왔다가
갈 때 갈 줄 아는
아는 대로 행하는
꽃이라 경건함도 아름답다
꽃을 생각하지 말고
꽃을 보고 배울 일이다
꽃처럼 살다 가려거든



<갈 수 없는 길>

세상 사람 모두 다니는 길을
바로 눈 앞에 두고도
누군가는 가지를 못 합니다
당신은 아무리 파묻어도
잠들지 않는 이릅입니다
산 채로 묻혀야하는 인연은
어찌나 몹쓸 운명인지
이승과 저승의 벽 사이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을 보낸 길은
살아서는 사무치는 모래바람
죽어서도 갈 수 없는 저주입니다
어리석은 청춘은 고사목이 되어
길 위에 선 채로 늙어갈 뿐





성명:정덕길

메일:duke_jung@hotmail.com

전화:010-9070-3857


















Articles

7 8 9 10 11 12 13 14 1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