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꽃망울
나는 피지 못한 꽃
아니 아직은 피지 않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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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하는 꽃을 보며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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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꽃을 볼 땐
내가 아니라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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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무심히 밟힌 새싹일지언정
언젠간 소담스레 피어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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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피는 순간
세상엔 봄이 차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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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젠간 피기를
여린 잎 모아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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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를 건너며
으슥한 밤공기가 시간을 채우고
그 사이를 하염없이 걷고 있다
뚜벅 뚜벅 줄곧 걷던 걸음이 생경할만큼
오랜만의 발걸음이다
뚝. 뚝. 모스부호처럼 끊기는 기억들은
왜이리 깜빡거리는 건지 모를 일이다
엇갈리고 또 엇갈리고
그 위에 겹겹이 쌓이는 기억들은 아련하기만 하고
흰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길 위에서
깜빡이며 서투른 발걸음을 굳게 내딛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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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람
꼭 이런 날엔 노곤함이 뒤따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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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찾아오는 무기력함에
나도 모르게 머금고 있던 하품이 배시시 새어 나오고
힘껏 두 팔을 내지르다 스치는 바람에 흠칫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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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열기를 머금은 여름 바람에
잘 마른 구름 하나 지쳐 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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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람은 참 부지런하기도 하지
구름 쉬는 모습 못 참아 이리저리 재촉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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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이별을 보탠다
하루 끝에 걸린 노을이 팔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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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마라
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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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잡았다 놓으면
손끝에 묻은 바람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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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떠나버리는 뒷모습 바라보며
고달픈 생의 주름 속에
또 하나의 이별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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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저 커피가 생각나는 건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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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마시고 싶다던 그 커피는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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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득해졌지만
한때는 익숙했던 그 시간들이
너무 그립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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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커피를 마시고 싶다
당신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