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병동 204호
휠체어 나무식탁 위
종이로 봄꽃을 접으며
젊은 기억속을 뛰어 다녀본다.
시간이 멈춰버린
배회의 숲에서
망상 속 유년의 꿈을 쥐고 놀아본다.
나열된 생각의 길을
걸어나오다
닫혀진 망각의 문 앞에서
주저앉아 버리는 기억의 습관
미움도 흘러간다
설움도 잊혀간다
기뻤던 순간도 하얗게 지워진다.
잊지 않으려 애썼던 자신의 이름조차
비틀거리다 눈 앞에서 사라져 간다.
오늘도 정지된 고요의 시간속에
자신을 찾아찾아 석양속에 묶어두는
치매병동 204호실
그 곳에 우리들의 어머니가 계신다.
우리동네 그 청년
우리동네 편의점 앞 야외의자엔
매일아침 한 청년이 출근을 한다.
같은 점퍼 같은 모자 같은 슬리퍼
분주하고 활기차게 의자에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큰 소리로 핸드폰과 대화를 한다.
우리동네 편의점 앞 야외테이블
그 청년의 전용 사무실이다.
컵라면도 먹고 졸기도 하고
성실하게 하루를 버티고나서
매일 밤 그 청년은 퇴근을 한다.
엄마손 꼭잡고 집으로 간다.
편의점 앞 그 청년의 엄마
그녀는 감사하다고 했다.
생업을 위해가는 새벽출근길
오늘도 무사히 견뎌주기를
밤11시 퇴근길
아들의 손 잡으면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다.
편의점이 폐업하던 날
그 청년은 약국앞에 서 있었다.
여전히 같은 점퍼 같은 모자 같은 슬리퍼
큰소리로 핸드폰과 대화를 하며
지나가는 경찰차에 경례를 한다
약국 앞 간이의자 등받이 뒤엔
초록색 우산이 장전되어 꽂혀있고
새벽공기 밟으며 일터로 가는
엄마의 등을
동풍이 엄호한다.
노인
날이 선 말끝에 마음을 베이고
촉이 선 표정에 심장이 찔리며
공원의 담배꽁초 한 봉지 다 줍고
퇴근하는길
지하철 경노석 여섯칸 의자는
오늘도 만석이다.
과거는 등뒤에 척 달라붙고
미래는 우박처럼 쏟아져 내린다.
백태 낀 안구에는
눈물도 씻어내지 못하는 세월이 묻어있고
보청기 사이로
전철바퀴 레일 가는 소리가 도깨비풀처럼 꽂힌다.
귓속의 달팽이관
풍차처럼 돌아간다.
병든 아내 밥 챙기러
집으로 가는골목
고등어 자반 두마리 검은 봉지 안에서 펄떡인다.
꽃샘 바람
시누이같은 꽃샘 바람
어찌그리 얄미운지
꽃이 제일 예쁠때에
확! 할퀴고 지나가니
아까운 꽃잎들
다 떨어지고 말았네
총각같은 꽃샘 바람
어찌 그리 능청인지
만개한 꽃송이들
쉭! 스치고 지나가면
새하얀 꽃잎들
꽃비되어 내려오네.
응모자 : 김호정
이메일 : jjinglovejh@gmail.com
HP : 010-8235-3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