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꽃봉오리가 돋아나던 계절
3월의 달력에 그림자가 차츰 질 무렵에
H는 말했다 벚꽃이 더 이상 피지 않았으면 좋겠다……
벚꽃이 피면
나는 당신에게로 가겠소
나는 당신에게서 가겠소
헷갈리는 말을 중얼거리기를
달이 눈을 뜨고 그 달이 실눈으로 마음을 훑을 때까지
또
떨어지는 매화에 개나리가 손을 내밀 때까지
누구보다 아팠을 미련에게
H는 흐느꼈다
멧비둘기의 허밍을 따라 혼자 앓던 사랑은 슬며시
손가락으로 튕기어도 아프지 않을 곡조가 되었다
갓 기지개를 켠 가야금이 가장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그런 나날들이었다
그를 할퀴는 목소리
탁한 시간이
눈물에 썩어가는 가야금이야말로 쓸 만하다
필름
한강가에 노을을 두고 어깨를 맞대던
사랑했던 그때 뒷모습만
마침내 기억에 남는 순간들
NG는 없이
서서히 클로즈 업, 줌 아웃.
아무런 배경음악 없는 시간도
대사 없는 눈망울도
롱 테이크 트레킹.
외운 듯 토해내는 말들도
붉은 입술에 맞추어
다시 클로즈 업, 그리고 줌 아웃.
플래시 백! 기억을 휘저어
한 장면, 한 장면 편집한다.
페이드 인, 페이드 아웃.
마침내 다듬어진 기억들
영사기로 탈탈 털어내는
한 편의 우리.
서린 밤의 거리
새벽 세시
밖에서 나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하얀 콧김을 내쉬며 나왔다
하늘이 도둑눈을 내렸다
서투른 솜씨로 바닥에 흩뿌려 놓았다
미세한 유리가루인 듯 반짝였다
어느 소리도 들리지 않는
어둔 밤
차가운 우주 속을 걷다,
아무래도 하늘이 내린 건
눈이 아닌 별이었나 보다
일 포스티노
우물이 말라도 차오르길 기다리고
던지는 그물이 서글픈 줄 몰라도
그러려니 했던 거라
꿀 바른 입술은 너무도 달콤해 중독되고
속삭인 말 한 마디에 눈이 멀어도
좋은 게 좋은 거라
이제 백지가 채워지고
거리가 사람으로 북적이게
전부 꽉 들어차고 나면
아, 또 부족하기를 아는 거라
위험한 줄 알면서도,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현혹되다
불 들어오지 않는 방
늘 나도 없는 곳
그래서 들어올 때마다 낯선 냄새가 나는 곳
그렇지만 한없이 나를 벗겨낼 수 있는 곳
혼잣말로 방이 가득 찼다.
담을 귀가 없어서
낱말들이 사라지질 않는데도, 조용하다.
홀로 몸을 뉘였다.
구석에 홀로 뉘였다.
오늘도 쓸쓸히 흥얼거리다 잠에 든다.
이름: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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